칼빈주석 로마서
3장

로마서 3장 6절 칼빈 주석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3: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이 참람한 발언을 비난하면서, 그는 그 반론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고 우선 자기가 그것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시작한다.

이는 기독교가 그런 엄청난 불합리를 수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혐오의 표현은 그가 채택할 수 있는 어떤 단순한 부정否定의 말보다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이 불손한 발언에 대해 질색을 표해야 하며 결코 거기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바로 그는 우리가 ‘간접 논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덧붙인다. 이는 그가 그 비방을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고, 그들의 이의異義 제기가 불합리하다고 간단하게 답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는 그들이 하는 말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직책에서 논증을 이끌어낸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불의하실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실제적인 능력에서 끌어낸 논증이다. 여기서 실제적인 능력이란 그분이 행하시는 일의 모든 과정과 그 질서 속에서 빛을 발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을 심판하는 것, 즉 그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세상을 바로잡고 그 안에 있는 어떤 혼란이든 그것을 가장 질서 잡힌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어느 것도 불의하게 결정하실 수 없다.” 바울은 창세기 18장 25절에 있는 모세의 글을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구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돔을 완전히 멸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이와 비슷한 표현이 욥기 34장 17절에 나와 있다.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종종 인간들 중에서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법과 정의에 반하게 권력을 탈취하거나 심사숙고 하지 않고 그런 권력 있는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들의 기준이 타락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결코 이런 부족함들이 없다. 그분은 본래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의로우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을 부인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그분이 불의하시다고 비난받는 것은 잘못이라고 결론 내린다.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은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바울의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지속적인 통치에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특별히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마침내 올바른 질서의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직접적인 반박을 통해 이러한 신성모독적 발언을 저지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면 좋을 것이다. “불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악함을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는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그 사악함이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