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2장

로마서 2장 26절 칼빈 주석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롬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이 논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수단은 항상 목적보다 하위에 있으며 목적에 종속된다. 할례는 율법에 언급되어 있으며, 따라서 율법보다 하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율법을 위해 제정된 할례를 지키는 것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만일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아무 효과가 없는 무익한 할례를 받고서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보다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무할례자가 본성상 타락했다 할지라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화(聖化)되어갈 것이고, 그리하여 무할례는 그에게 할례와 같이 여겨질 것이다.

하반절에 사용된 ‘무할례’uncircumcision라는 단어는 그 고유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상반절에서 그 단어는 사람을 물건 취급하듯 이방인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우리말 성경에서는 ‘무할례자’와 ‘무할례’라고 번역함으로써 그 둘을 구분하고 있다 - 역자 주).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바울이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인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려고 너무 안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그저 ‘만일 율법을 지키는 어떤 이방인을 찾을 수 있다면, 무할례 상태의 그의 의(義)가 의롭지 못한 상태의 유대인의 할례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다’라는 가설(假說)을 제시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음에 이어지는 “본래 무할례자가 …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라는 구문이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예(例)로 들어 설명한 것이라고 본다.

이는 남방 여왕이 올 것이라는 구절(마 12:42)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구절(눅 11:32)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런 견해를 가지는 것은 바로 바울이 사용한 말 때문이다. 그는 율법을 지키는 이방인이 율법을 범하는 자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방인이 무할례자이고 율법을 범하는 사람은 문자 그대로 할례를 받았더라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