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롬2:16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러한 완곡한 정의는 이 구절에 아주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도덕적 무감각이라는 은신처에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숨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철저하게 숨겨져 있는 은밀한 생각들이 그때가 되면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구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근거한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고전 4:5)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한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우리의 심판자 되시는 분께 진정으로 인정을 받기 원한다면 마음의 신실함을 위해서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권면을 기억하자.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그가 이 표현을 덧붙이는 것은, 자신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판단력에 상응하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는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으므로 이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물론 참 하나님 한 분만이 인간에게 복음을 줄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 사도들은 단지 그 복음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복음이 한편으로는 장차 있을 심판을 전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복음의 약속에 대한 완전한 실행이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드러나기까지 미루어진다면, 그것은 반드시 마지막 심판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부활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는 멸망이 된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고서는 그분을 전할 수가 없다. 부활과 멸망, 이 둘은 모두 심판의 날에 속한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을 심판의 날에 적용한다. 이 표현에 대한 다른 해석들도 있지만, 그 의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지명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자신의 심판을 행하시리라는 것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심판을 언제나 복음의 중요한 내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이 문장은 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