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2장

로마서 2장 14절 칼빈 주석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제 바울은 13절 상반절에 대한 증거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주장으로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선언하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논증을 펴서 우리에게 이 사실을 확신시킴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더 큰 갈망과 사랑을 우리에게서 불러일으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는 이방인들이 무지를 변명으로 내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의에 대한 어떤 규범을 가지고 있음을 그 행위를 통해 나타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다운 면이 전혀 없어서 어떤 법률의 제한도 받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지내는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다. 모든 나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자진해서 스스로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 헬라어에서 ‘프롤렙쎄이스’prolepseis라고 부르는 개념으로서, 인간의 마음에 본성적으로 심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실제로 율법은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율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그들에게 모세의 성문법(成文法)은 없지만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지식이 전무(全無)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런 지식이 전혀 없었다면, 그들은 악덕과 미덕을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악덕에 대해서는 벌을 줌으로써 그것을 제지하는 한편, 미덕에 대해서는 보상을 통해 영예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인정하고 칭송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울은 인간의 본성을 기록된 율법과 대조하고 있는데, 이는 이방인들이 의(義)에 대한 선천적인 빛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배우지만, 이방인들은 그 율법 대신 이 빛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