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2장

로마서 2장 13절 칼빈 주석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12:13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바울은 유대인들이 제시할 수도 있을 법한 이의(異意)를 예상하고 그것에 대해 앞질러 논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만 유일하게 율법에 대한 지식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을 의의 규범(신 4:1)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생각을 반박하기 위해서, 그는 율법을 듣거나 아는 것이 의를 제공해줄 만큼 그렇게 대단한 결과를 낳지는 않으며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5)라는 말씀처럼 율법에 대한 들음이나 앎에는 행함이 그 증거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얻고자 한다면 그 율법을 온전하게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는 완전한 행위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위로 말미암은 칭의(稱義)의 개념을 조작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은 만인의 경멸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무런 유익도 없는 논쟁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 칭의에 대해 장황하게 토론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일일 뿐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가 언급한 율법의 심판에 대해서만 유대인들에게 역설한다.

즉,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않는 한 그들은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으며, 율법을 범할 경우 즉시 그들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에 절대적인 의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여 유죄 선고를 받은 터라, 다른 의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참으로, 어느 누구도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사람만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면, 아무도 의롭다 칭함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왜냐하면 율법의 의무를 다했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