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1장

로마서 1장 22절 칼빈 주석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사람들이 이 구절에서 일반적으로 추론하는 내용은, 바울이 여기서 지혜에 대한 명성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고 특별히 주장하는 철학자들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 구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바는, 위대한 사람들의 탁월함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칭송 받을 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아무런 근거도 없게 되리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해석자들은 아주 빈약한 추론 과정을 거쳐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왜냐하면 특별히 철학자들만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다 공통적으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어떤 개념을 형성하려고 시도했고, 그분을 그들의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만들고자 애썼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주제넘은 태도가 철학 학파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우리에게 있는, 말하자면 모태(母胎)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악이 모든 세대에 창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껏 미신적 관행을 고안해내게 했음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정죄하고 있는 오만함은, 인간이 겸허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지혜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자기들의 낮은 처지와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린 것을 말한다. 바울은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멀리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는 이 원칙을 고수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은 거만하게 자기들 스스로를 높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보복으로 말미암아 어리석게 되었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앞의 해석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또 하나의 명백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오류(de affingenda Deo imagine)가 철학자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여 인정하고 승인한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