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1장

로마서 1장 20절 칼빈 주석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 분명히 보여

하나님은 원래 우리가 볼 수 없는 분이다. 그러나 그분의 위엄은 그분이 하신 모든 일과 그분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것들 속에서 그분을 인정했어야 한다. 그것들은 자기들을 만드신 창조주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이 세상을 보이지 않는 것들의 거울 혹은 반영(specula seu spectacula)이라고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히 11:3).

그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속성들을 자세히 기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알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만물을 지으신 그분은 시작도 없으신 분이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러한 발견을 하게 되면, 이제 그분의 신성이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성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분의 모든 속성이 신성이라는 이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주는 이 증거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되는지 분명하게 입증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고소당하는 것을 막을 만한 그 어떤 변명도 도무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 사이에 자신의 영광을 알리기 위해서 스스로를 드러내실 때, 그 빛 자체는 충분히 밝고 환하다. 그러나 우리가 눈멀었기 때문에 그 빛이 충분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해서 그런 것이니 우리의 사악함을 정죄하지 말아달라고 탄원할 만큼 그 정도로 우리의 눈이 먼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신성에 대한 개념을 가지게 되고, 그분이 어떤 속성을 가졌든 간에 그분을 예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판단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보고 참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빛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즉, 우리는 눈먼 까닭에 목표한 바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핑계할 수 없을 만큼은 충분히 본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진리를 사도행전 14장 17절에서 아주 잘 설명한다.

그는 지나간 세대에는 주님께서 모든 민족으로 무지 가운데 있도록 방임하셨으나 그렇다고 자신을 전혀 증거하지(아마르튀로이, amartyroi)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고 결실기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핑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하나님에 대한 이 지식은 구원을 주는 지식과는 크게 다르다. 구원을 주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의해 언급되었고(요 17:3), 예레미야는 그 지식을 자랑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렘 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