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1장

로마서 1장 5절 칼빈 주석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자신의 직분을 찬양하기 위해 꺼낸 복음에 대한 그 나름의 정의定義를 끝마친 후, 이제 바울은 자신의 소명을 주장하기 위해 돌아온다. 이 직분에 대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따로 언급하면서 환치법(換置法, 명사나 형용사를 그것이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 두지 않고 다른 형태로 두는 문법상의 변칙)이라는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도의 직분이 값없이 주어졌음을 의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사도직의 은혜를 의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그가 이 고귀한 직분에 지명된 것은 그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직분은 위험과 수고와 증오와 치욕을 당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성도들의 눈으로 볼 때는 결코 평범하거나 흔하지 않은 존엄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직분은 마땅히 은총으로 간주할 만한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가 사도가 되는 은혜를 입어”라고 풀이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은데, 그 의미는 동일하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암브로스(Ambrose, 4세기 말에 활동한 밀라노의 주교이자 서방 교회의 교부)는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지명되었다는 의미로 이 어구를 설명한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이 되어”라고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어구에서 ‘이름’이 지식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은 해석인 것 같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요일 3:23).

바울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함 받은 그릇이라고 전해진다(행 9:15).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은 ‘내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기 위하여’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순종하게 하나니

우리는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종하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자기 소명의 목적이 무엇인지 진술함으로써, 바울은 다시 한번 로마인들에게 그의 직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게 맡겨진 책임을 수행하는 것,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은 너희의 의무이다. 주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소명을 너희가 무익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즉, 복음을 전해 듣고서 그것을 업신여기며 무례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그분이 정하신 모든 것을 그르치는 것이다. 복음이 의도하는 바는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이 구절에서 믿음은 순종으로 언급되어 있다(우리말 성경에는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되어 있으나 칼빈이 인용한 성경에는 ‘unto obedience of faith’라고 되어 있어서 믿음이 순종이라는 말로 불린다 - 역자 주).

이는 주님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이 부르실 때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께 응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의도적인 불순종의 근원은 불신앙이다. 나는 ‘믿음에 순종하기 위하여’라는 번역보다는 ‘믿음으로 순종하기 위하여’라는 번역이 더 마음에 든다.

전자는 사도행전 6장 7절에서 한 번 사용되기는 했으나(우리말 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말을 ‘도’道라고 바꾸어서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번역했다 - 역자 주), 은유적으로 받아들이면 모를까 엄격히 말하면 바르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자신의 사역이 제자 삼는 일과 관계가 없다면, 사도로 임명된 것은 바울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도직이 모든 이방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인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자가 되도록 정해졌는데 로마인들이 그 이방인들의 수에 포함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로마인들의 사도로 더욱 분명하게 칭하고 있다.

사도들은 모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들은 특정 교회의 목회자나 감독으로 임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로서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책임을 질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도록 특별한 권위에 의해 임명된 것이다.

그가 비두니아를 거쳐 무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건이 이 진술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행 16:6-8). 그쪽으로 가는 길이 막힌 것은 그의 사역을 특정 지역에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곳이 아직 추수할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가 잠시 다른 곳에 가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