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1장

로마서 1장 1절 칼빈 주석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

바울

바울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만큼 그 이름의 배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른 해석자들이 자주 언급한 내용 외에 내가 추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나,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너무 지루하지 않게 몇 마디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짧게 다룰 것이다.

바울 사도가 총독 서기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한 것 때문에 그 기념으로 바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누가에 의해 오류임이 입증된다. 누가는 바울이 서기오의 회심 사건 이전에 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행 13:7,9). 또한 나는 바울 자신이 회심할 당시에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별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신학자로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이 이 견해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 견해 덕분에 자만심 강한 사울이 그리스도의 보잘것없는 종이 된 것에 대해 멋진 논증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바울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오리겐(Origen, 185~254. 알렉산드리아 파를 대표하는 기독교의 교부)의 결론이 더 타당성 있어 보인다. 사실 그의 종교와 혈통에 대한 표시로 부모가 사울이라는 가족명을 지어주었는데,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증거로 바울이라는 별명이 나중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많다.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으며, 바울이 살던 당시에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의 부모는 그가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감추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이스라엘 출신이라는 증거를 숨기게 할 만큼 그 사실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쓴 서신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 이름은 바울이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울이라는 이름이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편지를 받아볼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그 이름이 더 잘 알려진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바울 입장에서 볼 때, 일부러 유대인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로마에서나 각 지방에서 공연한 의심과 맹렬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것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보증하기 위해서 바울이 스스로 붙인 칭호이다. 그는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리고 이 소명이 로마 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자기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가르침에 대한 권위를 확실히 한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사도가 되었다고 인정받는 것뿐 아니라 특별히 로마 교회를 위한 사도로 알려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진술한다. 이는 어쩌다가 주제넘게 사도가 된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그런 다음 그는 바로 이어서 자신이 ‘택정함을 입었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단순히 하나님의 여러 백성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사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강조한다. 사도의 직분은 특별한 종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일반적인 주제에서 특별한 주제로 논증을 옮겨가고 있다. 가르치는 직분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종의 무리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종의 무리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영예를 가지고 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그의 사도직의 목적과 용도 모두 표현해준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한다). 이 어구語句를 사용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맡도록 택함 받은 목적을 짧게나마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기에게 붙인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칭호는 가르치는 일을 맡은 다른 모든 교사들과 공유하는 것이지만,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더 높은 위치에 두고 있다. 그러나 주제넘게 고집을 피워 사도의 직분을 강제로 탈취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이 어구의 의미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평범한 종이 아니라 사도라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주제넘게 애써서 된 사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지명하신 사도이다. 그는 사도직에 대한 좀더 명료한 설명을 이어간다. 즉,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가 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가리키는 것이라 보고 ‘택하심’의 의미를 그의 어머니 태胎로부터 택정하신 것(갈 1:15에 언급된 것처럼) 혹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것(누가가 언급한 것처럼)으로 보는 사람들의 의견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바울의 유일한 자랑은 그를 부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제넘게 사사로이 이 영예를 도용하고 있었다고는 도무지 의심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말씀 사역을 감당하기에 적절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 사역은 특별한 소명을 필요로 한다. 자신이 다른 어떤 사역보다 말씀 사역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명을 받지 않은 채 그 직분을 맡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도와 감독으로의 부르심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논의할 것이지만, 주목해야 할 요점은 사도의 직책이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도들의 후계자라고 자랑하면서, 머리에 쓰는 관冠과 손에 쥐는 홀笏과 그럴듯한 겉치레 말고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짓는 특징이 없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여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종’이라는 단어는 직분을 가리키기 때문에 사역자라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내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조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가정 아래 이 단어에 대한 쓸데없는 사색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