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로마서 주제

로마서 주제 7장 ~ 9장

율법의 용도와 구원의 보증

7장에서 그는 율법의 용도에 대하여 편견 없이 논하기 시작한다. 그는 앞에서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율법 자체가 우리를 정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논증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비난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는 율법이 온갖 당치않은 오명을 뒤집어쓸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는 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율법이 사망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은 우리의 잘못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율법이 어떻게 죄를 더 죄 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밝힌다. 그런 다음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는 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영靈과 육肉의 싸움에 대해서 기술한다. 이 싸움은 신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율법을 순종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탐욕의 잔재殘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8장은 많은 위로의 말씀을 담고 있다. 이는 그가 앞에서 비난한 바 있는 불순종에 대해서,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온전하지 못한 순종에 대해서 신자들이 알게 될 때 그들이 너무 겁을 먹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불경건한 자들이 이러한 위로를 근거 삼아 우쭐거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이 풍성히 거하는 거듭난 자들만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진술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 두 가지 진리를 설명한다. 첫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모든 사람은 여전히 자기의 죄짐에 아무리 무겁게 눌려 있어도 정죄를 당할 위험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성령의 성결케 하심을 경험하지 못한 채 육신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엄청난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에 바울은 우리 믿음의 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친히 증거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반대 의견이 제기될 것을 알고는, 이 세상에 살면서 당하게 되는 고난 때문에 영생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방해를 받거나 흐트러질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우리의 구원은 그러한 시련을 통해 촉진된다. 우리 구원의 탁월함에 비하면,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모든 고통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맏아들이고 하나님의 집에 머리가 되시기에 우리 모두가 따르고 본받아야 할 분이신 그리스도의 예를 들어서, 바울은 이 사실을 확증한다.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게 보증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사탄의 세력과 술수에 대한 담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멋진 찬양의 어조로 결론을 맺는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그분의 뜻

언약의 중요한 수호자요 상속자인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고민했다. 그들이 보기에 이는 언약의 성취를 하찮게 생각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서 언약이 폐기된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더 나은 대책을 마련해주지도 않은 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속된 구속자救贖者가 아니라는 증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은 9장 처음 부분에서 이러한 이의異議에 대해서 논박한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이는 혹시 자기가 그들에게 악의를 품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들을 다른 민족들보다 뛰어나게 해주는 구별된 특징들을 적절하게 언급하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서서히 진행시킨다. 즉, 그것은 유대인들이 눈멀었기 때문에 범하게 된 죄를 없애는 작업이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그의 씨로 여김을 받거나 언약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녀를 두 부류로 나눈다. 사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언약에 들어오게 되면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다.

바울은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어서 이 진리를 설명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일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주목하게 한다. 택함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만 달려 있는 것이므로, 인간의 가치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유기遺棄도 존재한다. 그분의 유기가 정당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하나님의 뜻 외에는 어느 것도 그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9장 끝부분에 가서 그는 이방인의 부르심과 유대인의 유기에 대한 증거가 선지서에 제시되어 있음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