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석 로마서
로마서 주제

로마서 주제 3장 ~ 6장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그는 인류가 스스로의 선함을 신뢰하고 의로움을 자랑하는 것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함을 들어 그들의 기를 꺾어놓는다. 이제 그는 자기가 앞에서 주장했던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명제로 되돌아간다. 그는 믿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지 설명한다.

그는 3장 끝부분에서 멋진 결론을 덧붙이는데, 이는 인간의 자만심이 가지고 있는 흉포함을 저지하고 그 자만심으로 감히 하나님의 은혜에 맞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또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자기 민족에게만 국한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랑이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4장에서 너무도 분명해서 아무런 논쟁의 여지가 없는 한 가지 예를 제시함으로써 논증을 해나간다. 그 예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기에 우리가 그를 하나의 모형과 일반적인 유형으로 삼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거한 후에, 우리도 그와 동일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바울은 정반대되는 두 가지를 대조함으로써,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에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론을 덧붙인다. 그리고 다윗의 증언을 들어 이 사실을 확증한다. 다윗은 인간의 복됨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에, 행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 만한 힘이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 다음 바울은 앞에서 잠깐 가볍게 언급했던바,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이방인들보다 높게 여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주제를 좀더 충분히 다룬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인간의 행복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공통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증거한다. 바울은 여기서 할례의 용도에 대해서 약간 언급할 기회를 얻는다. 그런 다음 구원의 약속이 하나님의 선하심에만 의존한다는 점을 덧붙인다. 만일 구원의 약속이 율법에 따라 결정된다면, 인간의 양심은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며(사람들이 양심으로 그 약속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약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고 틀림없는 것이 되도록 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진리만 생각해야지 우리 자신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이 구원의 문제에서 우리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았던 아브라함의 본을 따라야 한다. 4장 끝부분에서 바울은 비슷한 점들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비교하는데, 이는 자신이 제시한 아브라함의 예를 좀더 넓게 적용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화

5장에서는 믿음에서 난 의의 열매와 효력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앞에서 말한 것을 부연 설명하는 쪽으로 이 장의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한다. 이는 자기가 주장하는 요점을 좀더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정도가 심한 경우를 논증함으로써 그보다 정도가 덜한 경우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구속救贖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가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실 정도로 풍성한 사랑을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에게 쏟아부으셨다. 이제 바울은 죄와 값없이 얻은 의義, 아담과 그리스도, 사망과 생명, 그리고 율법과 은혜를 서로 비교한다. 우리의 죄악이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에 그 모든 것들이 삼킨 바 된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6장에서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성화聖化에 대해서 논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맛보고 나서, 마치 은혜가 다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그 본래의 부도덕함과 욕망에 빠져들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바울은 성화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례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의 논리를 펼친다.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해준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는데,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그분의 생명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림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거듭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온다.

바울은 이 사실을 근거로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한다. 이 정결함과 거룩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 더 큰 자유를 추구하는 육신의 불경건한 탐닉을 그만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죄의 나라에서 의義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에게서 마땅히 나타나야 하는 것들이다. 바울은 또한 율법의 폐지에 대해서 짧게 언급하는데, 율법을 폐함으로써 신약新約이 빛을 비추게 된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언약에는 죄의 용서와 함께 성령에 대한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