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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째 사랑은 누구인가요?

출근해서 일하고 육아하고 청소도 하고  처리해야할 일도 하고보니 어느 덧 아이를 재워야 할 시간이 되어 씻기고 재우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버렸습니다. 기도해야지, 말씀 봐야지... 하고 마음의 원함은 가득한데 어느덧 눈도 몸도 천근만근입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날 것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지만 하루하루 이렇게 흘러 가는 삶 속에서 지쳐만 갑니다. 그러나 가장 귀하고 소중한것을 먼저 할때 주님이 새힘 주실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녀는 매주 하루의 절반을 예수님에게 드리면서 일상에서 물러나 기도했다. 친구들에게도 그 시간에는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 가족은 몹시 언짢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한 목표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은 점차 적응했다.

가족은 그녀의 묵상 시간으로 인해 가족 전체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 알게 되자 오히려 그녀의 행동을 전적으로 찬성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찾아오면 우리가 대접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하루 중 특정 시간을 내도록 원하실 때 얼마든지 더 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면, 특히 소중한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영적 생명의 위험 신호이다. 그것은 우리가 영혼과 관계 된 점에서 그 사람에게 잘못 매여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그리고 그 속박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든 미묘하든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적용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_누가복음 14:26.

심각한 문제이다! 예수님은 누구를 제자로 인정하시는가?
조금도 나뉘지 않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가장 가까운 혈육까지도 기꺼이 포기하려는 사람들만 제자로 인정하신다. 예수님의 이 어려운 말씀, 곧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이나 아내와 자녀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말씀은 ‘누가 우리 사랑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예수님이 사랑을 요구하며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두말없이 드려야 한다. 만약 그 순간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무언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면, 그 사람이 부모이든 배우자이든 자녀이든 그들의 요구가 우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 이 동시에 나에게 사랑을 요구한다면 나는 더 사랑하는 사람의 요청과 소망과 뜻에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 삶의 기본적인 진리이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단언한다. 다른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참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신다. 나는 어떤 사람의 삶에서 이 사실을 목격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향한 이런 큰 사랑을 체험하기를 오랫동안 갈망해왔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결정적인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지만, 해결의 열쇠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영적 훈련에 전념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그의 마음이 어떤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너무 가득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방해했던 것 이다. 그의 마음은 그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고 그 사랑에 온통 빠져 있었다. 그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주었고,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희생하곤 했다. 그는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사랑의 첫째 자리에 모셨다고 확신하고 살았지만, 실상은 그 사람을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가 예수님이 실제로 요구하시는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일상의 삶에서 그의 마음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던가? 그의 계획, 소망, 활동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가 실망스러운 일을 많이 겪게하셨고, 그런 일들을 통해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을 조각조각 부수셨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를 옭아매던 잘못된 사랑의 속박을 보혈의 능력으로 깨셨다.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알기 쉽다. 그 길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나뉜 마음이라는 장애물을 치울 때만 전진할 수 있음”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이 사랑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많은 사랑이 그 사랑을 뒤덮고 목 졸랐다. 그런 사랑들을 단호하게 치워야 ‘처음 사랑’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바실레아 슐링크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