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제자들이 종종 물러나 휴식을 취했던(요 18:1)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 기슭의 동산.
감당하기 힘든 짐을 진 한 인간이 짐을 벗게 되기를 간청하는 기도.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헌신적인 마음의 바람과 결합된 기도.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무겁게 짓누르던 고뇌의 짐.
그런 것 같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제자들이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22:45).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일단의 병사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무리(요 18:3).
미리 짠 암호대로 예수님께 입을 맞춤으로써(마 26:48,49).
그는 자신의 스승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꺼냈고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베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무력으로 대응했다면 혼자 힘으로 그 많은 무리를 당해낼 수 없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반드시 살아남아 예수님의 일을 지속해야 했던 제자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마 26:51-54 ; 요 18:10,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 18:6).
산헤드린(유대인의 종교 최고의결기관)의 긴급회의 혹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열린 유대인 대회의(마 26:57).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짓(눅 22:55-62).
그렇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 그랬다(요 21장).
신성모독 혐의로 사형 판결(마 26:65,66).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대제사장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 목을 매어 죽었다(마 27:3-5).
팔레스타인 총독 빌라도(눅 23:1).
그들은 약속된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으면서도, 유월절 주간에 부정하게 될까봐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기를 싫어하였다.
로마에 대한 반역죄.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눅 23:2).
그렇지 않다. 첫째 내용은 거짓말이었고 둘째 내용은 오해였다.
로마 총독이 신성모독을 사형에 해당되는 죄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예수님을 죽이기를 바랐지만 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이기 때문에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여러 번 노력하였다(마 27:23,24 ; 눅 23:14,15,20,22 ; 요 18:38 ; 19:4).
그렇다. 그는 그럴 만한 권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고발이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요 19:12).
로마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그런 와중에 살인을 저질렀던 대중 지도자 바라바(눅 23:18,19).
그들은 예수님께 자색(왕을 상징하는 색) 옷을 입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였다(마 27:27-30 ; 요 19:2,3).
예수님께 합당한 처벌을 하였으니 그만들 진정하라는 의미로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워 유대인들 앞에 데리고 나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요 19:4-16).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십자가 형벌은 노예들이나 폭동을 일으킨 정치범들에게 가해지던 것이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써서 예수님 십자가 위에 붙임으로써(요 19:19).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눅 23:34 ; 눅 23:43 ; 요 19:26,27 ; 마 27:46 ; 요 19:28 ; 요 19:30 ; 눅 23:46).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마 27:51,52).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은밀한 제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신을 달라고 요청하여 자신의 새 무덤에 안치하였다(마 27:57-60).
그날은 안식일이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쉬고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훔쳐간 뒤에 부활했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예수님 무덤에 경비병을 세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고 그의 허락을 얻어냈다(마 27:6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