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도록 율법이 명하였기 때문에.
나병에 걸렸거나 나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레 13:2 ; 눅 17:14).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침으로써 믿음으로 행동한 뒤에(눅 17:13).
그렇지 않다. 열 명 가운데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고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눅 17:15,16).
기도를 계속해야 하며 중간에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교만하게 의로움을 내세우지 말고 겸손하게 회개해야 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다.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 19:3-9).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장면.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 19:14).
영원한 생명보다는 현세의 물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마 19:22).
그렇지 않다. 재물은 언제나 유혹과 덫이 된다.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올바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재물은 귀한 축복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말씀하셨다. 모든 병자들에게 똑같은 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고(마 19:23,24).
죽음 이후의 시간이나 상태.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의 부를 포기하는 모든 사람이 풍성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
먼저 일하러 온 사람들과 품삯을 합의했다는 사실, 마지막에 온 사람들이 늦게 왔다는 이유로 품삯 지불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인이라는 것, 각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것들을 주신다는 것, 그러나 하나님의 처분은 단순한 공의(公義)의 처분이 아니라 완벽한 자비와 조합된 완벽한 공의의 처분이라는 것.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막 10:35).
살로메(막 15:40).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 나라의 가장 높은 두 자리에 앉혀달라고(마 20:21).
그렇지는 않다. 그러한 청에는 예수님 가까이서 더 많이 섬기고자 하는 의욕도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그녀의 두 아들에게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셨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감당하실 고난과 시련.
마실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였고 야고보는 순교하였다.
예수님 나라의 높은 자리는 예수님이 아무에게나 선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라고(마 20:23).
성경에는 그런 암시가 전혀 없다. 그들은 분명 그들에게 합당한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예수님께 요청했던 방식으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꺼이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고자 하는 것, 모든 사람들을 섬기려고 하는 것(마 20:26,27).
맹인 두 사람(마 20:30). 바디매오라는 맹인은 믿음의 간청자로 잘 알려져 있다(막 10:46-52 ; 눅 18:35-43).
여리고의 부유한 세리(눅 19:1-10).
그를 주목하셨고 그의 집에 머물기로 하셨다(눅 19:5).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손님으로 갔다고(눅 19:7).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우리가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있을 때, 그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
예수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는 행위(요 12:1-8).
예수님이 살려주셨던 나사로의 누이동생.
그렇지 않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인물로 ‘죄를 지은 한 여자’(눅 7:37)이다. 사람들은 이 두 여인을 종종 혼동하고 있다.
가룟 유다(요 12:4,5).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막 14:8,9 ; 마 26:13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