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곳은 이스라엘 북서부, 즉 지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베니게(페니키아) 땅이다.
그리스 혈통으로 수리아(시리아)에서 태어나 두로에 살고 있던 어떤 여인. 그녀는 귀신들려 고생하는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다(막 7:26).
유대인들(마 15:24,26).
그렇지 않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붙잡는다(막 7:24-30).
이스라엘 땅 갈릴리 호수 근처로(막 7:31).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쳐주시는 이적(막 7:32-35).
그렇다. 큰 무리가 몰려왔다(막 8:1).
전에 군중을 먹이셨던 것처럼 그들을 먹이셨다(막 8:1-9. 93장 66-68번 문답 참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7),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큰 반석 위에 함께 세워진 주춧돌로 삼아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는 의미(행 4:11,12 ; 고전 3:9-15 ; 엡 2:20 ; 계 21:14).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그렇지 않다. 이 구절에 언급된 것들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마 18:18).
그는 악한 자의 유혹을 대변한 탓에 예수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는 꾸지람을 들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것을 알린 오순절 성령강림을 언급하는 것이거나, 많은 성경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의 악한 시대에 종말을 고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는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예수님 모습이 변화되는 장면, 그리고 예수님이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는 장면(막 9:2-8 ; 눅 9:28-36).
그렇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마 3:17).
세례 요한(막 9:13).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데려왔지만, 고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믿음과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에(막 9:19,29).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다(막 9:22).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는 말씀.
모든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바쳤던 헌금 혹은 성전의 일을 위해 바쳤던 성전 세금(출 30:13 ; 대하 24:9 ; 느 10:32).
예수님은 그들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 없으니 내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마 17:27).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고 사려 깊게 행동하되 특히 작은 일에서는 더욱 유의하라는 교훈.
서로 누가 크냐 하는 것을 놓고(막 9:33-37).
겸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것이 되는 데서 오는 모든 축복의 상급(시 10:17 ; 잠 22:4 ; 약 4:10 ; 벧전 5:5).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어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배척하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이유로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면, 그 사람은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막 9:41).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고의로 해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중한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막 9:42).
죄뿐만 아니라 죄를 짓게 조장하고 유혹하는 모든 것들까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반드시 버려야 한다(막 9:43-49).
용서의 교훈.
우선 일대일로 상대하여 권고하라.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확증하게 하라.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마 18:15-17).
딱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는 것(요일 5:14).
일곱 번(마 18:21).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8:22). 그것은 사실상 횟수에 관계없이 용서하라는 의미이다.
대략 140억 원쯤 될 것이고, 당시에는 그 액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암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빚을 탕감해주셨기 때문이다.
백 데나리온(대략 20만 원 정도).
그런 차이를 숫자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것을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다면, 우리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당연히 용서해야 할 것이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용서할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종에게 내린 심판을 통하여.
초막절에 갈릴리에서(요 7:1-9).
유대인의 여러 명절 가운데 하나.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올 때마다 그들 조상들의 40년 광야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천막에서 생활하였다(레 23:39-43 참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공언했다가 회당에서 출교를 당할까봐.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모자람 없이 충분히 깨달을 것이다(요 7:17).
“구약이 약속한 진짜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미.
모든 나라들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하나님 백성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다는 것, 그래서 목마른 영혼의 모든 갈증을 해소한다는 것.
모세가 신명기 18장 15,18절에서 언급했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
니고데모(요 7:50,51).
세상의 빛.
그렇다. 요 1:4,5,9 ; 3:19 ; 9:5 ; 12:35,36,46.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의심과 불신앙의 어둠 속에서 걷지 않을 것이며 나중에 바깥 어둠에 내쳐지지 않으리라는 것(마 25:30 ; 요 8:12).
겉으로 나타난 모습과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뜻.
십자가에 올려 못 박는다는 뜻(요 3:14 ; 12:32).
유대인들이 진정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뜻.
그렇지 않다. 영혼의 죽음과 멸망, 둘째 사망(계 21:8)을 가리킨다.
멀리 보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봄으로써(요 8:52-59).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영원 전부터 언제나 항상 존재하신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