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로마군대 장교.
한마디 말씀으로 자신의 하인을 고쳐달라고(눅 7:7).
유대인들에게 높이 칭찬 받던 사람으로 겸손하고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눅 7:4,5).
어떤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시는 이적(눅 7:11-17).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과 성취하신 예언들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라는 답변(눅 7:18-23).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눅 7:28).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예수님이 죄를 지은 한 여인을 용서해주신 이야기.
무엇보다 그녀는 죄에서 돌아서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슬피 울었고, 그 눈물로 예수님 발을 닦았고,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었다(눅 7:37-39).
식탁 둘레에 비스듬히 누워서.
시몬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초대하였고, 예수님께 특별한 예를 갖추기 위해 마음을 쓰지도 않았고, 유대인들이 손님들에게 관습으로 행하던 몇 가지 의례도 빼먹었다는 사실(눅 7:44-46).
예수님이 귀신들의 두목과 한 패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나오는 것이라고(막 3:22).
“가정이든 나라든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제대로 설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탄의 나라도 분열되어 서로 싸운다면 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나와 결탁하여 자기 부하들을 내쫓게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막 3:23-26 참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께. 아무 뜻 없이 내뱉은 한마디까지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형제자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막 3:31-35).
비유. 예수님을 적대하는 무리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명확한 영적 적용이 가능한 자연적인 사건이나 상태에 관한 이야기.
이 비유의 많은 부분이 예수님께서 배 위에 올라가 갈릴리 호수 해변의 군중에게 말씀하신 것이므로(마 13:1,2) ‘해변에서의 비유’라 일컫는다.
네 종류의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 혹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9,18-23).
하나님 말씀.
경솔한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서 바로 잊는다는 의미(마 13:19).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믿지만 진실한 성품과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시련을 당하면 신실함을 잃는다는 의미(마 13:20,21).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믿지만 재물 욕심과 세상 근심으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의미(마 13:22).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 그래서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그 결과를 실제적인 열매로 보여주는 사람(마 13:23).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36-43).
알곡을 많이 닮았지만 매우 유해한 잡초.
불에 태워진다.
세상(시대)의 종말.
천사들.
악한 자의 자녀들(마 13:38).
● 천국은 씨앗일 때는 아주 작지만 자라면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와 같다.
● 천국은 어떤 여인의 밀가루를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
●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물과 같아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천국은 극히 값진 진주와 같아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
● 천국은 그물로 온갖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것과 같아 어부들은 좋은 것들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버린다.
한마디 말씀으로 갈릴리 바다(호수)의 폭풍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이적(막 4:35-41).
무슨 일을 당하든지 예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굳게 믿어야 한다는 교훈.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
더러운 귀신이 들려 매우 난폭하고 위험한 사람(막 5:2-5).
멀리서 달려와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막 5:7).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막 5:8).
귀신들의 간청대로 그 근처에서 먹이를 먹고 있던 큰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막 5:12).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막 5:13).
돼지를 치던 자들과 주인들은 겁이 나서 예수님께 그곳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였고,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다(막 5:14-20).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교훈.
야이로라는 이름의 유대인 지도자(막 5:22-24).
그의 어린 딸이 다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지라도 예수님이 능히 고치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막 5:23).
고질병을 앓고 있던 어떤 여인이 군중 틈에 끼어 있다가 예수님 옷에 손을 댐으로써 치유 받는 일(막 5:24-34).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
그렇다. 나인 성에서 그랬다(눅 7:11-16). 하지만 그 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수님이 능히 깨울 수 있는 잠(요 11:11 참고).
그렇다. 예수님이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 5:43).
맹인 두 사람과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마 9:27-34).
그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그리스도)으로 고백하였고,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시자 그 집까지 따라 들어갔다는 것(마 9:27-29).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막 6:1-3).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선지자라도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막 6:4).
나사렛 사람들의 완고한 불신앙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죽는 위험(마 9:36 ; 사 53:6).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마을들로 보내시며 예수님이 했던 것처럼 말씀을 전파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라고 명하셨다(마 10:1-11:1 ; 막 6:7-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그들(오늘 우리 시대 사람들)이 받은 특권과 기회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받았던 특권과 기회보다 더 크기 때문에.
마태복음 24장 21절에 나오는 큰 환난의 끝.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시련과 고통을 불평하지 않고 감당한다는 뜻.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뜻.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사람은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마 10:42).
자기가 참수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그런 이적들을 행한 것이라고(막 6:14).
91장 1, 2번 문답을 참고하라.
자기 딸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은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고, 그 딸이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청하였고,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 있고 또 손님들의 눈도 있었기 때문에(막 6:19-28).
헤롯의 동생 빌립의 아내로 헤롯의 아내가 된 여자.
●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온 제자들과 함께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 헤롯이 통치하는 지역에 계속 머물렀다가는 헤롯에게 해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 세례 요한의 죽음에 성난 백성들이 민중봉기를 일으킬 수도 있었고, 그런 백성들 가운데 있다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위험을 면하지 못할 것이므로.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어린이 수를 빼고도 5천 명가량의 군중을 먹이시는 이적(마 14:15-21).
그만한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장성한 어떤 아이(요 6:9).
그렇다. 그들은 다 배불리 먹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양을 남겼다(마 14:20).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셨다(마 14:22).
갑자기 역풍이 분 탓에 그들은 풍랑에 시달렸다(마 14:24).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셨다(마 14:23-25).
겁에 질려 유령이라고 소리를 질렀다(마 14:26).
바다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려고 하였다(마 14:29).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갖고 있는 동안은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그 믿음을 잃자마자 바로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마 14:30).
그렇다. 즉각 건져주셨다(마 14:31).
가버나움에서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를 하셨다(요 6:22-71).
예수님이 그들을 먹이신 연고로 그들이 떡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라는 말씀으로(요 6:26,27).
세상의 위로와 재물.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근거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것으로 ‘도장 찍었다’ 혹은 ‘확인하였다’는 뜻.
그렇다. 생명의 길을 걷는 데 필요한 것은 회개하고 믿는 것뿐이다. 그럴 때 모든 선한 행실들이 뒤따를 것이다(막 1:15 참고).
그렇지 않다.
광야의 만나와 같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요 6:34).
있다. 예수님은 인간 영혼의 모든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그렇지 않다.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의례적 세척을 뜻한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유대 장로들의 전통의 일부 혹은 초기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부가한 조항이다(막 7:3).
그렇지 않다. 그들의 전통은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시켰다(막 7:6-13). 그들은 율법의 정신과 내적 의미는 버리고 거기에 외적인 세세한 규정들만 부가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아시므로 위선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헛되이 믿는 것이라고 경고하심으로써(막 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