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_빌 2:13
하나님은 당신 ‘안에서’ 일하신다. 당신의 생각이 태어나는 그곳, 당신 의지의 옥좌가 세워진 그곳, 당신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 당신 존재의 내면의 성지(聖地) 그곳에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까닭은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거나 의도하는 모든 것을 지시하고 통제하고 제안하기 위함이며, 우리의 모든 능력과 힘을 결합하여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은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진술의 ‘안에서’라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그 참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진술의 ‘안에서’라는 단어를 ‘위해서’로 바꾸어보자.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런 식으로 바꾸면 이 메시지는 그 능력을 순식간에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우리와 별개로 일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 또 우리와 협의 없이 일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동 주체의 이원성(二元性)을 연상시킬 뿐 본래의 진술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조화의 의미를 함축하지 못한다. 본래의 진술을 또다시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해보자.
너희와 ‘함께’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이 말은 우리 옆에 누군가가 있어 짐이 무거워질 때 잘 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길이 험해질 때 잘 걸을 수 있도록 조언과 위로를 해준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런 표현 역시 하나님의 의지(뜻)와 인간의 의지의 완벽한 조화를 의미하기보다는 행동 주체의 이원성을 암시하며 어쩌면 충돌과 갈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 2:13)라는 말씀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완벽한 조화와 결합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욕구를 만드신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의지에 힘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가 단지 시적인 감상으로서가 아니라 명백하고도 영광스러운 사실로서 하나님의 의지(뜻)가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합당한 궁극적인 영광됨이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내주하심’(indwelling)으로 우리의 의지(意志)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욕구를 만드시며,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욕을 주신다 (때로는 간접적인 요인들을 통하여 의욕을 주신다).
또한 우리의 의지에 영향을 끼치시고, 우리의 의지를 형성하시며, 우리의 의지를 참된 행위의 길로 끌어당기신다.
- 요한복음 16장 13절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골로새서 1장9절~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