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익스프레스
성경 익스프레스_신약

선택 시대(눅 6:12-9:62)

우리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분은 하늘에서 오신 분인가 아니면 지옥에서 오신 분인가?

예수님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면 우리는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께 굴복해야 한다. 그러나 지옥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절대적으로 멀리해야 한다. 예수님을 그저 훌륭한 도덕 교사 정도로만 간주하는 것은, 그분이 베푸신 수많은 이적과, 신성(神性)을 가지고 계시다는 그분의 주장에 비추어보았을 때 실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결단을 촉구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설 것인지, 세상 편에 설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목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신다!

▣ Kin 친척

예수님은 계속 북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사렛에 당도하셨다. 그리고 그곳의 친척과 친지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메시아라고 공식적으로 밝히셨다(요 4:43-45).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이것을 믿었지만 형제자매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나는 인간적인 면에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형제나 자매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면 당신은 그와 함께 살고 싶겠는가? 그분은 언제나 장난감을 깨끗이 정돈하고 신발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부모님이 부르면 즉각 달려갔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그 형제자매들이 먼저 못 박지 않은 것이 가히 기적처럼 느껴진다.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다(눅 4:16-30).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조차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했다(고전 15:7).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의 ‘나사렛’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거부와 따돌림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완벽한 전도자이자 교사이신 예수님조차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불신앙의 대답을 들으셨으니 말이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을 구세주로 나타내시자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가버나움을 향해 자신의 길을 계속 가셨다.

▣ Location 본거지

이후 3년 동안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사역의 본거지로 삼고 활동하셨는데, 그곳에 계시는 동안 주님은 시몬 베드로의 집에 거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간혹 며칠 동안의 짧은 여정으로 예루살렘을 다녀오시긴 했지만 공생애 대부분을 갈릴리 지역에서 보내셨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와 이적의 80퍼센트가 가버나움을 본거지로 갈릴리 지역에서 말씀하고 행하신 것들이다.

다음의 ‘그림으로 보는 선택 시대’는 예수님이 이 시기에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거나 겪으신 일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기 전에 각 사건의 내용을 짐작해보기 바란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수록 바리새인들의 반발 또한 거세졌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定罪)할 증거와 핑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사역의 본거지를 옮긴 이후부터 산상수훈(山上垂訓)을 베풀기 전까지 8가지 이적을 베푸셨다. 이제 그 이적들을 발생 순서대로 간단히 살펴보자.

첫 번째 이적: 첫 번째로 이적을 베푸신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다(요 4:46-54).

두 번째 이적: 베드로와 세 명의 어부가 엄청난 양의 고기를 잡았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했다. 주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무서워 말라”(눅 5:10)라고 말씀하신다.

세 번째 이적: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다(눅 4:31-37). 이때 귀신 들린 사람이 다음과 같이 소리 질렀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4).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귀신들도 예수님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귀신들조차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 물론 그냥 아는 것과 믿고 의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약 2:19).

네 번째 이적: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눅 4:38-44).

다섯 번째 이적: 예수께서 문둥병 환자를 고치신 뒤, 자신의 권세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를 제사장에게 보내셨다(눅 5:12-16).

여섯 번째 이적: 친구들에 의해 지붕 위에서 아래로 매달아 내려진 중풍병 환자가 일어나 걸음으로써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지니고 계심을 입증했다(눅 5:17-26).

일곱 번째 이적: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병자(病者)가 38년 만에 처음으로 걷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로 행하신 이적이었다(요 5:1-15). 예수님은 이 이적을 베푸신 뒤에 자신이 장차 모든 사람들을 죽음에서 일으키고 각 사람의 인생을 심판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주장하셨다(요 5:25-29).

여덟 번째 이적: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셨다(눅 6:6-11).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을 목격하고 크게 기뻐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막 3:1-6).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마태의 집에서 여러 세리들과 죄인들과 식사를 하고 계실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한다고 트집을 잡았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으로 금식하지 않는 제자들을 변호하셨는데, 혼인 잔치에 참석한 하객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하는 법이 없다고 하시며 장차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그들도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5:33-39). 이것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후 비유(진리나 교훈을 가르치는 짧은 이야기)를 들어 말씀하신 두 번째 경우였다.

▣ Message 메시지

예수님은 가버나움 근처 갈릴리 해변에 제자들을 모으시고 ‘산상수훈’이라 불리는 설교를 하셨다(눅 6:17-49 ; 마 5-7장). 이 유명한 메시지 가운데 주기도문과 황금률(黃金律,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가르침)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주제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랑, 결혼, 기도, 베풂, 용서 등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고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예수님은 메시지의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머도 사용하셨다. 음식 그릇에서 하루살이는 조심스레 걸러내면서 낙타는 꿀떡 삼키는 사람(마 23:24)이나 다른 사람 눈에 들어간 먼지는 빼내려고 애쓰면서 자기 눈에 박힌 전봇대는 보지 못하는 사람(눅 6:41,42)을 상상해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로움의 표준을 높게 제시하셨다. 제자들의 ‘의’(義)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그것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야말로 모세 율법의 사소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따져서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서기관, 유대 전통으로부터) 제자들이 들은 말과 자신이 하신 말씀을 끊임없이 대조하며 가르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바탕으로 한 장황한 규칙의 목록을 만들어 그 모든 조항들을 꼼꼼하게 지켜야만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핵심이며, 외적으로 보이는 행동보다 내면의 생각과 동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일례로 예수님은 욕정이 간음이나 혼전 관계의 행위로 발전되는 것을 막으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권고로 산상수훈의 결론을 맺으신다(눅 6:47-49).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기 인생을 모래성처럼 허망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간단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 Nature 자연

이 주제는 예수님이 가버나움과 갈릴리에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의 이적들은 그분께서 자연을 압도하는 하늘의 권세를 지니고 계심을 입증한다.

예수님은 병들어 죽어가는 로마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신 후에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셨다(눅 7:1-17).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예수님은 물질계에서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또한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주심으로써 영적 세계에서도 완벽한 권세를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셨다(눅 8:1-3).

복음서에는 수많은 군중이 하늘의 치료자에게 모여들어 치유를 받았다는 일반적인 설명 외에도 35개의 구체적인 이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발생 순서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심(눅 8:22-25)
데가볼리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심(눅 8:26-39)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치유를 받음(눅 8:42-48)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눅 8:40-42, 49-56)
소경 두 사람을 치유하여 보게 하심(마 9:27-31)
귀신 들려 벙어리가 된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힘을 회복시켜주심(마 9:32-34)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심(눅 9:10-17)
물 위를 걸으심(요 6:14-21)
베드로에게 능력을 주어 물 위를 걷게 하심(마 14:25-33)
가나안 여자의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심(마 15:21-28)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치심(막 7:31-37)
데가볼리에서 떡 일곱 덩이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심(마 15:29-38)
벳세다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막 8:22-26)
소년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심(눅 9:37-43)
베드로에게 동전을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를 낚으라고 하심(마 17:24-27)

니고데모가 옳았다. 보통의 인간은 예수님이 베푸셨던 이적을 베풀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 틀림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 Opposition 반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정점에 달한 무렵 예수님에 대한 반대 또한 최고 정점에 달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모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르치신 진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그분을 죽이기로 결의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말해야만, 매사에 자기들을 비판하는 눈엣가시 같은 그분을 처리할 합당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하신 능력을 사탄에게서 나온 더러운 능력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요,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하여는 마태복음 12장 22-37절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예수님을 정식으로 고소하여 유죄 판결을 끌어내어 십자가 처형을 시키기 위한 적절한 때와 장소를 모색하는 것뿐이었다.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강력하고도 격렬한 어조로 질책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사회적, 종교적 영향력을 악용하여 영적 안목이 없는 무지한 백성들을 죄에 빠뜨렸다. 예수님은 그들을 뱀, 위선자, 겉은 회칠하여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송장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한 무덤이라 일컬으셨다.

예수님은 불신앙의 세대에게는 한 가지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시며 요나 선지자의 표적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 Parables 비유

비유는 진리를 받아들일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는 밝히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바리새인들처럼) 감추시는 예수님만의 독특한 교수 방법이었다. 이는 성경을 두루 관통하는 기본 원칙과 일치한다. 빛에 순종하면 더 밝은 빛을 얻을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어두움만 얻을 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를 풀어서 그 의미를 설명해주기도 하셨다. 예수님의 이적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비유 역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베푸신 것들이다.

복음서에는 최소한 55가지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 언급하신 비유 몇 가지를 말씀하신 순서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눅 8:4-15)
똑같은 씨앗이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이렇게 각기 다른 땅에 뿌려졌다. 그리고 토양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올바라야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등경 위의 등불 비유(눅 8:16-18)
영적인 빛이든 물리적인 빛이든 빛은 사람들에게 밝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씨앗 비유(막 4:26-29)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룬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마 13:24-30, 36-43)
심판이 오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탄의 자녀들이 교회 안에 함께 있을 것이지만 최후에 사탄의 자녀들은 맹렬한 풀무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겨자씨 비유(마 13:31,32)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서 놀랍게 확장될 것이다.

누룩 비유(마 13:33-35)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밀가루 세 포대에 섞여 부풀어 오르는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확산될수록 그 영향력 또한 증대될 것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마 13:44)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세상의 재물과 비교했을 때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하다.

값진 진주 비유(마 13:45,46)
어떤 대가나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그물 비유(마 13:47-50)
하나님이 심판의 그물로 모든 사람들을 모아 의인은 구원하고 악인은 심판하실 것이다.

(마 13:51,52)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가 된 모든 서기관을 새것과 옛것을 자기 창고에서 꺼내주는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 또한 구약을 성취하시고(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가르침을 더하셨다.

(마 18:12-14)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한 마리의 양이라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시며 혹이라도 길을 잃은 양이 있으면 끝까지 찾아다니신다.

(마 18:21-35)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주셨으니 우리도 서로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

▣ Question 질문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에게 불쑥 질문을 던지셨다. 자신의 정체에 관한 최근 여론조사의 결과를 물으신 것이었다(눅 9:18-21).

이에 제자들이 “응답자들 가운데 48퍼센트는 주님을 세례 요한으로 생각하고 있고, 32퍼센트는 엘리야로, 10퍼센트는 다른 선지자로 여기고 있고, 또 다른 10퍼센트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물론 이 말은 내가 성경 본문을 토대로 상상해본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가 정확하게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한 신성(神性)을 지닌 약속된 메시아로 고백한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 사실을 저절로 깨달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당신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당신은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그대로 그분을 믿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贖)하기 위해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 인생의 왕과 구세주로서 신뢰를 받아 마땅하다!

▣ Revelation 계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특별한 확증을 받았다. 예수님이 높은 산(가이사랴 빌립보 북쪽에 위치한 헬몬산으로 추정)에 올라가 그들 앞에서 변화되셨기 때문이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9).

예수님이 최초의 성탄절에 이 비천한 세상에 오시기 위해, 웅대한 천국을 떠나며 스스로 감추셨던 영광의 광채 일부를 세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세 제자가 숨죽여 듣는 가운데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다. 대화의 주제는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는 일, 곧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것이었다.

변화산에 올라갔던 세 제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빛을 따르면 더 밝은 빛을 보게 된다는 진리의 증인이 되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더 큰 일을 주관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약속 그대로였다. 이 원칙은 물질을 소유하는 데뿐 아니라 영적 통찰력을 얻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연 당신은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