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익스프레스
성경 익스프레스_신약

주장 시대(눅 3:1-6:11)

▣ Dove 비둘기

예수님은 서른 살 무렵에 요단강에서 사촌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이때 성삼위(聖三位)가 모두 나타나셨다. 성자(聖子)께서는 물에 계셨고, 성령(聖靈)께서는 비둘기 형체로 임하셨으며, 성부(聖父)께서는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눅 3:21-23).

세례 요한은 백성들을 향해 옛길에서 돌이켜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촉구했고, 돌아온 백성들에게 회개의 징표로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은 회개할 죄가 없는 거룩하신 분이지만 자신을 죄 많은 인간과 동일시하셨다.

▣ Enemy 원수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뒤에 성령에게 이끌려 사해 북쪽 끝 광야로 들어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눅 4:1-13). 예수님의 원수는 곧 우리의 원수이다. 포효하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벧전 5:8).

팽팽하게 빚어지던 우주적 갈등인 선과 악의 세력이 유대 광야 한쪽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시험을 받으셨던 것일까? 물론 그렇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 죄를 지으실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인간으로서는 그렇고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가장 어려운 시험을 받았지만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황량한 사막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상태였다. 사탄은 그런 예수께 음식과 인기와 권력을 제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이 제안한 것을 얻기 위해 거룩한 능력을 사용하지도, 세상 나라와 사람들의 칭송을 얻기 위해 십자가를 피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잠깐의 유익을 위해 영혼을 파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세 차례의 시험을 말씀(신명기 말씀을 인용함으로써)으로 이겨 내셨다. 이로 미루어 우리는 예수님이 평소에 구약성경을 즐겨 암송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은 구약성경을 몇 구절이나 암송할 수 있는가?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수첩이나 책상머리에 끼워 놓은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시 119:9-11).

▣ Followers 제자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일부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베레아에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예수님을 좇기 시작했다. 세례 요한이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할수록 그를 따르는 무리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사역자였다. 왜냐하면 그의 역할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열두 제자의 이름을 외울 수 있는가? 베드로의 가버나움 집 주소가 ‘맨 가(街) 52번지’(52 MAN ST.)였다는 가상의 문장 하나만 기억하면 제자들의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숫자 ‘5’는 ‘J’로 시작하는 제자 5명의 이름을, ‘2’는 ‘P’로 시작하는 제자 2명의 이름을 ‘M, A, N, S, T’는 각각 그 철자로 시작하는 제자들의 이름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택하여 3년이라는 공생애 동안 그들과 동행하신 까닭이 무엇일까? 예수님은 자신을 추종하는 수많은 무리 가운데서 열두 ‘사도’(“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를 택하셨다. 열두 명을 뽑기 전날 밤, 주님은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눅 6:12-16). 이것은 주께서 열두 제자를 결정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보여준다. 위의 질문에 대해 마가가 대답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가까이에 두고 자신의 가르침을 삶으로 익히게 함으로써 그들을 ‘제자’(“배우는 자”라는 뜻)로 훈련시키기를 원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 보내 자신의 일을 하도록 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는데도 우리를 하늘의 영광 가운데 살게 하지 않고 이 땅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열두 사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세상에 보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 35-51절을 천천히 읽으면서 예수님이 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주목하기 바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당신은 예수님을 메시아(혹은 그리스도)로 고백한 첫 번째 제자가 안드레이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처음으로 고백한 제자가 나다나엘이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Guest 손님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주인이 준비한 포도주가 동이 났을 때, 예수님은 은혜를 베풀어 그를 난처한 상황에서 건져주셨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자신이 창조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이 첫 번째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게 되었다(요 2:1-11).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참석해 그곳에서 친히 이적을 베푸심으로써 자신이 결혼 제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셨다. 나중에 예수님은 결혼이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등장한 결혼 제도(창 2장)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 안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이런 놀라운 관계를 고안할 만큼 지혜로우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 Housecleaning 성전 정화

이 책에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 평면도’를 제시했다. 그 그림을 잘 보면 예루살렘 성전이 매우 넓은 공간으로 구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전 남쪽에 있는 ‘이방인의 뜰’은 유대인의 성전 예배에 참석한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으로서 이방인들은 이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반면 유대인 여자들은 이방인보다 더 안쪽까지 들어가 ‘여인들의 뜰’까지 접근할 수 있었고, 유대인 남자들은 유대인 여자들보다 더 들어가 ‘이스라엘의 뜰’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제단을 비롯한 그 이외의 구역은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몇몇 유대인들이 넓은 ‘이방인의 뜰’에 좌판을 설치하고서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제물로 가져온 동물들을 검수하여 언제나 흠을 찾아냈다.

율법에 의하면 흠이 있는 동물은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서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순례자들은 제물로 가져온 동물을 빼앗기고 유대인들이 벌여 놓은 좌판으로 안내되어 그들의 ‘검수와 승인을 받은’ 동물을 억지로 구입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 유대인 장사꾼들은 소위 ‘검수와 승인을 받은’ 그 동물들을 어디서 구했던 것일까? 그 동물들은 다른 게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에게서 빼앗은 바로 그 제물이었다!

게다가 순례자들이 유대인의 ‘검수와 승인을 받은’ 동물을 구입하려면 먼저 세상에서 사용하던 ‘부정한 돈’을 성전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바꿔야 했다. 물론 유대인 사기꾼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은 환율을 적용해 환전해주기 마련이었다. 결국 순례자들은 비싼 가격에 제물을 구입해야만 했다. 이보다 더 지독한 착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이 의분(義憤)을 참지 못해 돈 바꾸는 자들과 상인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신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라고 엄중히 꾸짖으셨다(요 2:16).

그러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인지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고 자신이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킬 것이라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공생애 최초로 부활을 예고하셨다(요 2:18-22).

이 사건으로 예수님은 백성들의 호의를 얻으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의 권위를 압도하는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바리새 연방수사국’의 수배자 명단 맨 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기 시작했다.

▣ Interview 면담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 관원이자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으로 여기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이적을 베푸셨던 것처럼 그렇게 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거듭남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에 예수님은 이
땅에 존재하려면 육신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적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셨다(요3:1-1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세상 죄에 대한 희생제물로 내어주심으로써 사랑의 몫을 다하셨다. 우리의 몫은 예수님을 인생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천국의 소망으로서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아 소유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

▣ Jacob’s Well 야곱의 우물

예수님은 유대 지역을 떠나 제자들과 북쪽으로 향하셨다. 그리고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은 물을 마시기 위해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곳에 잠시 머무셨고,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나셨다.

주께서 예루살렘에서 만난 니고데모는 존경 받는 상류층 사람이었지만, 우물가에서 만난 이 여인은 가련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주님은 이 여인이 육신의 갈증을 해소할 물을 찾고 있음을 아시고 그녀에게 영적 목마름을 완전히 해소해줄 수 있는 생수를 소개하셨다.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로 돌아가 우물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저질렀던 모든 행위를 낱낱이 알고 있다고 전했을 때, 수가 성의 많은 남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여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그 부정한 여인의 간증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 4:1-42).

예수님은 수가 성 사람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나눠주고자 하실 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상류층에서 시작하여 그 영향력이 아래로 흐르게 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 마을에서 가장 죄 많은 여인에게서 시작하여 그녀가 철저하게 변화된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하셨다. 죄 많은 한 여인을 구원하심으로써 다른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