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대교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 상대방을 물어뜯고 싸우면서 형식적인 종교로 쇠퇴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규칙과 의식(儀式)을 의도적으로 어긴다고 여겨 예수님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구약 시대에 우상숭배를 하던 것이 장황한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종교성을 추구하며 헛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때 대제사장이 이끄는 ‘산헤드린’(Sanhedrin)은 유대 사회의 종교 및 민사 문제에 관해 재판하는 최고 의결기관으로 기능했지만, 법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은 여전히 로마 당국의 재가(裁可)를 받아야 했다. 회당은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위한 가르침과 만남의 장소로 계속 기능했다.
당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한 6개의 유대 분파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리새파: 보수파로서 구약의 율법과 전통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복잡한 규칙과 의식을 준수할 것을 강요했다.
사두개파: 종교적, 정치적 자유주의자들로서 부활과 영혼 불멸을 믿지 않았다. 전통을 반대하는 한편 바리새인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서기관: 직업적 율법 교사로서 구약과 전통을 연구하며 유대 사회에서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율법의 세세한 부분을 놓고 종종 불필요한 논쟁을 벌였으며, 예수님을 몹시도 미워했다.
헤롯당: 로마 당국 편에 서서 헤롯 일가의 권력을 지속시키기를 원했던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정치적 반동주의자로 간주했다.
열심당: 헤롯당의 정치적 적수(敵讐)로서 로마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정치 형태를 모세 시대처럼 신정(神政)으로 되돌리기를 원했다.
에세네파: 쿰란 지역(사해 북서쪽)에 은거함으로써 부패한 사회와 타락한 종교로부터 도피했다. 혹자는 세례 요한이 에세네파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