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패권 다툼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에 관한 책을 어디든 펴보라. 거기서 우리는 인간이 동식물은 쉽게 다스렸어도 인류 최초 세대에 에덴으로 들어온 ‘반항적 기질’은 결코 다스리지 못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권력 다툼은 구약의 르호보암 왕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세금 증대 정책으로 인해 히브리 통일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BC 930년)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BC 900년경에는 앗수르제국이 근동의 패권을 차지했지만, 그로부터 900년이 지난 신약 시대에는 로마제국이 세상사를 좌지우지했다. 이 두 제국의 전성기 사이에 다른 세 제국들(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이 차례대로 발흥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은 내내 외세의 압제를 받았지만 한 세기 동안은 독립을 누리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근동의 패권을 차지했던 강대국들을 떠올리려면 다음의 표어를 기억하라(벧전 3:2,15 참조).
“항상 정결하여라!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라(Always Be Pure, Giving Just Reasons)!”
다음 표어에 사용된 영어 단어들의 첫 글자가 고대 근동의 패권을 차지했던 강대국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과 일치한다.
다음 페이지에 제시한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을 보라. 이 지도에 BC 900년에서 신약 시대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강대국들(이스라엘은 제외하고)의 명칭과 수도를 통치 순서대로 표기해놓았다. 물론 이 다섯 강대국들이 동시에 패권 다툼을 벌인 것은 아니며, 각각의 강대국들이 전성기에 달했을 때에는 이 지역 전체를 통치할 만큼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앗수르제국'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하여 그 백성을 세계 각 지역에 흩어 놓았다(BC 722년). 이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通婚)하여 생긴 혼혈족을 ‘사마리아인’이라 하는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남유다 후손들로서 순수 혈통을 보존하고 있던)은 이들을 몹시도 혐오했다. ‘사마리아인’이라는 명칭은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서 유래한다.
앗수르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켰지만 남왕국 유다는 그대로 놔뒀다. 덕분에 남유다는 이후 한 세기 반 동안 더 존속할 수 있었다. 전통에 충실했던 남유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을 때, 제자들이 그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요 4:1-42).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의 인구가 북쪽으로부터 이방인, 사마리아인, 유대인의 순으로 분포된 것은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정복한 결과이다. 앗수르는 BC 612년까지 존속하다가 신흥 바벨론제국에 멸망당했다.
'바벨론제국' 바벨론은 BC 612-536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패권을 휘둘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BC 606년에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여 BC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파괴했다. 다니엘서를 읽어보면 느부갓네살이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대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응하셨는지 알 수 있다.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된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회당은 유다 땅 외곽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위한 예배 처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유대인이 10명 이상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건립되었다). 예수님도 가버나움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치유의 이적을 베푸셨다. 사도들 역시 회당을 전초 기지로 삼아 낯선 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다.
'페르시아제국' 바벨론은 BC 536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했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제국의 초대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풀어주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비록 솔로몬 성전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성전을 재건했고, 이때부터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공식 집단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구약 시대는 페르시아(혹은 메대와 바사)가 세상을 지배하는 상태에서 종결된다. 페르시아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BC 332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스 제국' 페르시아제국은 그리스(헬라)에 의해 멸망당했고,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영토 확장을 통해 그리스 문명을 피정복 국가들에 확산시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탐욕을 정복하지 못해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리스제국의 지배는 약 150년 동안 지속되었다(BC 332-176년).
예수님 당시에는 그리스어(헬라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따로 어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었다. 또한 신약성경이 기록(참고로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급속히 확산되어 널리 읽힐 수 있었던 것도 당대의 주된 언어가 헬라어였기 때문이다. 헬라어는 복음의 내용을 더욱 간결하고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일조했다.
'유대인의 독립 시대' 그리스제국의 영화(榮華)가 시들어갈 무렵, 남유다의 마카비 일가(Maccabees)가 대대적인 민중 봉기를 일으켜(BC 176년) 유대인의 독립을 이루었고, 하스모니아 가문(Hasmoneans)이 약 1세기 동안(BC 176-63년) 팔레스타인의 자치(自治)를 구현했다. 이 시기에 400년의 침묵기 동안 잠자고 있던 영적 활동이 활발하게 되살아났다.
'로마제국' 유대인의 독립 시대는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의 예루살렘 침공으로 종식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로마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AD 500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치세기에 태어나셨다. 이때 로마 황제에게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위임 받은 헤롯 대왕은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의 남아(男兒)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한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더욱 크게 확장하고 미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