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두 왕국의 백성들에게 충분히 경고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북에 총 30명의 선지자들을 급파하여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신 데서 알 수 있다.
이때 활동한 선지자들 가운데 8명이 ‘예언서’(선지서)를 기록했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비롯한 몇몇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여 책을 쓰지 않았다. 또한 3명의 선지자는 선교사로서 외국에 나가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에돔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오바댜, 앗수르에 말씀을 전한 요나와 나훔이 그들이다. 이때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은 은혜로 용서를 받았지만, 회개하기를 거부한 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선지자들의 설교는 이중(二重)의 기대로 가득했다. 하나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였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기대였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대변자들은 장차 임할 하나님나라에 관해서도 많이 말했지만, 그보다는 그들 세대의 잘못을 엄중히 책망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포도원’이 열매 맺기를 기대하셨다. 하늘의 농부께서는 일꾼들을 고용하여(선지자들을 세워) 가지치기를 하심으로써(다가올 멸망에 대해 경고하심으로써) 깨달을 만한 이스라엘 민족이 깨닫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고통 받는 자들은 위로했고 안일하게 사는 자들은 괴롭게 했다.
선지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리콜’(recall, 어떤 상품에 결함이 있을 때 생산 기업에서 그 상품을 회수하여 점검 ·교환·수리해주는 제도) 계획을 갖고 계시다고 선포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살지 않음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에 크나큰 누(累)를 끼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선지자들은 적절한 비유의 말과 상징적인 행동을 활용해 바닥까지 실추된 하나님의 기준을 회복시키려 애썼다. 선지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지자들은 이런 딱딱한 메시지를 전했으므로 백성의 인기투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반응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메시지에 통상적으로 보이는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반응이란 다름 아니라 ‘설교자가 심기를 건드리면 그를 핍박하라!’라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모진 박해를 받았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으므로 견고한 자세로 백성들에게 믿음과 순종과 회개를 촉구했다.
사실 남유다의 일부 선지자들은 경건한 왕들의 후원을 등에 업고 간헐적으로 회개와 부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 두 왕국의 백성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방통행로로 걷기를 고집하여 마침내 외세의 침략을 받아 포로가 되고 말았다. 히브리 민족은 선지자들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결국 고난과 불행을 자초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전 경고 없이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 사례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 삶의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징계를 되풀이하심으로써 무언가를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순종의 길을 걷기를 바라시지만, 우리의 순종을 격려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신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은 물론 미래를 ‘예언’하는 일도 맡았다. 선지자들이 미래를 예언한 까닭은 백성의 변화를 촉구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주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선지자들이 살던 당대에 성취된 예언들은 그 예언이 어떤 분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입증했다.
한편 먼 장래에 관한 예언들(아직까지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을 포함하여)은 하나님의 징계가 하나님의 싫어하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회초리는 언제나 자녀들을 가르쳐서 바르게 하기 위한 것이지, 집에서 내쫓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최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메시아께서 장차 이루실 나라에서 그것을 맛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