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은 주로 두 사람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 14명의 사사 중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원성에 반대했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사울은 금세 미끄러져 죄에 빠졌고 차기 왕으로 내정된 다윗을 몹시도 시기하여 끝까지 추적하여 죽이려고 했다. 이런 사울의 태도는 경건한 사무엘의 성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무엘상의 주제를 두 어절로 요약한다면 “사울과 사무엘”이 될 것이다.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누구보다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한 청년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기스는 용맹스럽고 강인하고 부유한 사람이었다(삼상 9:1-3). 사울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과 가르침을 받은 뒤 비상시국에 처하여 왕의 직무를 수행했다(삼상 11장). 사울은 치세 초기에 암몬 족속과 블레셋 족속과의 전투에서 잇달아 대승(大勝)을 거둠으로써 백성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사무엘상 10장에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왕의 취임식을 거행하기 위해 집결해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드디어 새 왕이 취임 선서를 하는 순서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왕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소리친다.
“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모두들 흩어져서 왕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짐짝 사이에 숨어 있는 사울을 발견한다. 그렇다. 사울은 그렇게 겸손했다. 그의 출발은 좋았다. 그럼에도 그의 종말은 비극적이었다. 그가 전장(戰場)에서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이다(삼상 31장).
그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주신 명백한 명령을 어기고 자기 생각대로 일을 수행하면서부터 파멸하기 시작했다(삼상 13장). 사무엘이 죄를 지적했을 때, 그는 회개하기는커녕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죄에 대해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타당하게 보이는 이유를 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 후 사울에게는 모든 일이 점점 안 좋게 돌아갔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넘겨주셨다(삼상 16:1).
어느 날, 사울은 백성들이 자기 부하인 다윗과 자기를 비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사울은 기가 꺾였다.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 18:7).
그때 이후로 사울은 미친 듯이 다윗을 질투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추적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냈다(삼상 18-30장). ‘질투’라는 이름의 괴물이 사울을 집어삼킨 것이었다.
사울은 자기 합리화와 질투심으로 사탄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기 가족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하려 했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후에 그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을 때, 그의 운명은 정해지고 말았다. 사울을 향한 사탄의 목표는 우리를 향한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인간을 향한 사탄의 목표는 단 하나, 우리 영혼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이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사탄은 사울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우리에게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할 때, 사랑과 기쁨과 성공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성경의 기준 대신 세상의 기준을 따르게 된다.
질투와 시기심은 우리 자신의 장점과 잠재력을 파괴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뜨린다. 그리고 자기 합리화(죄에 대해 변명하는 것)는 우리를 사탄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켜 사탄이 원하는 대로 손상을 입는 결과를 낳는다.
‘사울의 파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죄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것으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인생을 허비하게 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러나 이제라도 이 사실에 유념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과 소망이 있다. 사도행전 9장을 읽어보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울의 동명이인인 사울(바울)은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소망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당신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면, 다음 성경구절을 암송해뒀다가 사탄이 유혹할 때마다 힘차게 외치기 바란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