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산상수훈’(마 5-7장)을 가르치셨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의로움의 표준을 요약하셨다. 제자들의 의(義)는 모세 율법의 시시콜콜한 의미까지 꼬치꼬치 따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해야 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구전 전통을 통해 그때까지 들어왔던 말과 정반대되는 말씀을 전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장황한 규칙의 목록(의롭게 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으로 격하시켰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고 가르치며 내적인 생각과 동기가 외적인 형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거나 외적으로 행하는 게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육신의 정욕이 실제적인 간음 행위로 귀착되는 것을 막으려면 먼저 마음으로부터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가버나움에서 실로 많은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연을 압도하는 권능의 신성(神性)을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요 4:46-54).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심(눅 5:1-11).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구해주심
(막 1:21-28 ; 눅 4:31-37).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
(마 8:14,15 ; 막 1:29-31 ; 눅 4:38,39).
-문둥병 환자를 고치심
(마 8:2-4 ; 막 1:40-45 ; 눅 5:12-16).
-중풍 환자를 고치심
(마 9:2-8 ; 막 2:3-12 ; 눅 5:17-26).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
(마 12:10-13 ; 막 3:1-5 ; 눅 6:6-10).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마 8:5-13 ; 눅 7:1-10).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눅 7:11-16).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심
(마 12:22 ; 눅 11:14).
-광풍을 잔잔하게 하심
(마 8:23-27 ; 막 4:35-41 ; 눅 8:22-25).
-혈루증 앓는 여자를 고치심
(마 9:20-22 ; 막 5:25-34 ; 눅 8:43-48).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마 9:18,19,23-26 ; 막 5:22-24,35-43 ; 눅 8:41,42,49-56).
-두 소경을 고치심(마 9:27-31).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심(마 9:32-34).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심
(마 14:13-21 ; 막 6:33-44 ; 눅 9:11-17 ; 요 6:1-14).
-물 위를 걸으심(마 14:22-33 ; 막 6:45-52 ; 요 6:19).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얻으심(마 17:27).
이 밖에도 예수께서 베푸신 이적은 무수히 많다! 니고데모의 말이 옳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행할 수 없다(요 3:2).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여전히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극에 달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공식적인 판결을 내린 곳이 가버나움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늘에서 왔느냐, 지옥에서 왔느냐’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한 도덕 교사 정도로 간주해버리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신성을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초자연적인 이적들을 수없이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주님으로서 받아들이고 복종할 뿐 아니라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했던 말씀을 그대로 시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이며, 회칠한 무덤이며, 죽은 자들의 뼈로 가득한 자이며, 독사이며,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사소한 일은 꼬치꼬치 따지고 정작 중요한 일은 대충 넘어가는) 자라고 하셨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이런 발언에 심기가 뒤틀렸고(이것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능력이 지옥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해야 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가버나움에서 내린 결정이 ‘용서받지 못할 죄’이며 또한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단언하셨다(마 12:31,32).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하신 능력을 사탄에게서 나온 부정한 힘으로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고소할 시점과 장소를 정하고, 유죄판결과 사형선고를 얻어낼 방도만 찾으면 되었다.
그들이 논쟁의 마지막 대목에서 표적을 보여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대답하시면서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인자(人子), 곧 예수님도 사흘 밤낮을 땅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2:38-40).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때부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버나움에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기까지 몇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성경에는 딱 한 가지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의 결론으로서, 모래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에 대한 비유(마 7:24-27)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다른 모든 비유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한 이후에 나온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비유가 믿음의 눈을 가진 자에게는 진리를 펼쳐 보이시고, 바리새인들처럼 진리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닫으시는 예수님의 은혜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을 반대하는 인간들이 더 큰 정죄감을 갖지 않도록 하셨다. 이것은 성경을 두루 관통하는 기본적인 원칙, 곧 빛에 순종하면 더 밝은 빛을 얻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계속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는 원칙에 일치한다. 또한 예수님은 군중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몇 가지 비유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직접 풀어주시기도 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대부분은 이적과 마찬가지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