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파노라마
성경 파노라마_구약

에스라·느헤미야서 : 육적 활동과 영적 활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땅에 마땅히 돌아가야 했던 70년의 안식을 허락하신 후,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 민족을 3차에 걸쳐 귀환시키셨다. 그 가운데 두 차례의 귀환이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유대 민족 일부를 이끌고 1차로 귀환한 스룹바벨을 세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산산이 파괴했던 성전을 보수하게 하셨다. 그로부터 78년 후에 에스라는 2차로 귀환하여 영적으로 목말라 있던 백성들을 소생시켰다.

이 책의 제목은 에스라의 이름을 땄지만, 1장부터 6장까지는 스룹바벨이 주인공이고 에스라는 7장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에스라가 돌아오고 나서 14년 뒤, 느헤미야가 세 번째로 백성들을 이끌고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다. 느헤미야의 시대에도 에스라는 백성들을 영적으로 각성시키는 의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에스라서의 성전 재건에 관한 기록과 느헤미야서의 성벽 재건에 관한 기록이 둘 다 비슷하게, 먼저는 육적 활동을 강조하고 나중에 영적 활동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에스라서는 두 차례의 귀환에 대해 기록하는 반면, 느헤미야서는 두 가지의 건축에 대해 기록한다.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성전 재건에 관해 기록하고, 느헤미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성벽 재건축에 관해 기록한다. 에스라서 7장부터 10장까지는 백성들의 부흥을 기록하고, 느헤미야서 7장부터 13장까지는 백성들의 영적 재건축에 대해 기록한다.

나는 이 두 권의 쌍둥이 책에서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육적 활동과 영적 활동의 균형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육체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가꾸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영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한 주간을 돌이켜보라. 당신은 분명 생존에 필요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육체적인 활동을 최소한 몇 가지 이상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난 한 주 168시간 중에서 영적인 삶을 발전시키는 데 몇 시간이나 할애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한 시간을 묻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가장 쌩쌩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는가? 지난 한 주 동안 아버지의 말씀을 얼마나 공부했고 얼마나 적용했고 암송했는가? 기도가 당신 삶의 일부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단순히 무엇을 달라고 간청하는 수준을 넘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 목마른 이웃들에게 냉수를 몇 잔이나 건넸는가? 소득을 얻자마자(월급을 받자마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렸는가?

‘그리스도인의 섬김’이라는 차원에서 당신은 예배당 건물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갖는가, 아니면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쏟는가? 프로그램과 행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가, 아니면 기도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는가?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어느 것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니라 두 가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균형 잡힌 신앙을 갖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 가운데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영적 성장에 삶의 최우선 순위를 두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육적인 면이 영적인 면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그때그때의 긴급 사항들로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이며 분망함 속에서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한때 나는 목회생활에 눌려 영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빌 가서드(Bill Gothard, 미국의 복음주의 강연가이자 저술가)의 세미나에 참석해 육적 활동과 영적 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해결책을 발견했다. 그는 하루에 적어도 5분 이상 성경을 읽겠다고 서원하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그까짓 5분이 무슨 도움이 될지 미심쩍었지만, 실천해보니 타성을 극복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탄은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어 성경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해 자신의 최고 기술을 구사한다. 우리보다 말씀의 능력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약 2:19).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면 영적으로 무척 쇠약해진다.

아무튼 일단 서원을 하자 그것이 나를 강력하게 몰아붙여서 그로부터 12년 동안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어떤 날에는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딱 5분만 말씀을 묵상하기도 했지만 어긴 날은 하루도 없다. 서원은 결코 가볍게 할 것이 아니다. 서원을 하기 전에 먼저 전도서 5장을 묵상하기 바란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그런 서원을 했다는 것을 날마다 일깨워주신다. 가끔 피곤에 지쳐 서원한 것을 잊고 잠에 빠지려고 할 때면, 내 머릿속에서 “서원했잖아! 서원했잖아! 서원했잖아!” 하는 소리가 마치 북을 치는 것처럼 둥둥 울리기 때문이다. 철면피 고집쟁이 자녀가 아니라면 그렇게 강력하게 일깨워주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외면한 채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서원은 타성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심지어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약의 열두 시대를 통해 12가지 생활 원리를 살펴봤다(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생활 원리가 공통이다). 당신이 이 생활 원리를 현실에 적용해야 할 지침이 아니라 학구적인 명제로만 받아들이거나 혹은 이 모든 원칙들을 이행해야 한다는 부담에 지레 위축될까봐 염려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 하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고 해서, 오늘 할 수 있는 것까지 하지 않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 6장과 7장 도입부에 제시했던 ‘구약성경의 생활 원리’ 도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한 가지 원칙을 택하라. 그리고 생활에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 몇 가지를 놓고 기도한 다음 그 원칙을 적어보기 바란다.

성경을 개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신약과 구약을 비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신약과 구약이 강조하는 점은 서로 다르다. 신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 이런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