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파노라마
성경 파노라마_구약

바벨론 포로 :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고난이 수반된다

사탄은 우리의 모든 고난이 우리의 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믿게 만들어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생각을 품게 한다. 물론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고난은 에덴에서의 원죄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죄가 영원히 추방되고 나면 고난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고난이 우리 각자의 죄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문제를 오해하고 있던 제자들의 오류를 어떻게 바로잡아주셨는지 주목해보라(요 9:1-3).

욥의 세 친구를 기억하는가? 그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지만, 가증스러운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충고함으로써 오히려 고통만 가중시켰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그 딱한 친구들의 잘못도 바로잡아주셨다(욥 42장).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들도 본인의 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고통을 종종 당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자기 백성들을 신실하게 격려하셨다. 그리고 이 징계의 기간 동안 당신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시키셨다.
성경에서 가장 힘을 북돋워주는 말씀을 묵상하고 싶다면, 문맥의 흐름을 생각하며 스바냐서 3장 17절을 암송해보기 바란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 예루살렘에서 마지막으로 사역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스바냐 선지자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런 관점에서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을 묵상해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시는지(심지어 징계하시는 중에라도) 확인해보기 바란다.

70년의 바벨론 포로 기간에는 3명의 선지자들이 활동했다. 그중에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남아 예루살렘의 파괴를 목격했고, 소수의 남은 백성들을 위해 사역하다가 그들과 함께 애굽으로 도망쳤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기 백성들 가운데 그리고 바벨론 궁정 가운데 하나님의 증인을 보내셨다. 바벨론 왕실을 대상으로 사역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는가? 바벨론 왕이 주는 부정한 음식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뜻을 정했던 사람을 기억하는가? 맞다.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 선지자이다!

그러면 다니엘보다 몇 년 뒤에 포로로 잡혀가 유대인 일반 서민들과 함께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앉았던 또 다른 선지자, 바퀴들 안에 있는 바퀴들의 환상을 보고 부름을 받았던 선지자, 나중에 계곡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는 환상을 보았던 선지자가 누구인지 기억나는가? 그렇다. 에스겔 선지자이다!

한 사람은 바벨론 왕족을 위해 사역했고 다른 사람은 유대인 포로들을 위해 사역했지만,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다가 엄청난 고난을 당했다는 점에서 두 선지자는 비슷하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정복하는 것을 겪어야 했고, 무려 1,5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포로로 끌려갔다. 또한 일단의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얼마간 사형 판결 아래 놓였고, 감당하기 어려운 환상을 본 뒤에는 몇 주 동안을 슬픔으로 보내야 했다.

에스겔 선지자는 달갑지 않은 메시지를 전한다는 이유로 같은 민족에게 모진 핍박을 받았다. 그는 430일 동안 한쪽으로만 누워 있었으며(겔 4:1-15), 머리털과 수염을 모두 깎아야 했고, 아내가 죽었을 때도 슬퍼할 수 없었다.
이 두 명의 신실한 종들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을 사명의 일부로 여겼다. 베드로는 고난에 관한 장(章)에서 주 예수께서 본을 보이셨으므로 그분의 자취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벧전 2:21). 그리고 바울은 이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롬 8:17).

우리는 욥의 경우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경우를 통해 ‘어떤’ 고난의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피조물의 고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우리의 생각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없다고 해서 영원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성품이나 동기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가 ‘선행으로 인한 고난’을 구한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그 섬김의 일부로 고난(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을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대답을 읽어보라(마 5:11,12). 또한 바울의 대답을 읽어보라(롬 8:18 ; 고후 12:1-10). 그리고 장차 영광 가운데 에스겔과 다니엘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 물어보라. 나는 그들이 무엇이라 대답할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