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선지자는 구약 시대 예언의 마지막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음 장면을 위해 무대를 다시 배열했다. 주인공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인공에 앞서 오게 될 사자(말 4:5, 눅 1:17), 곧 세례 요한이 건네받았다.
또한 말라기 선지자는 아브라함 이후 2천 년 동안 계시와 구속과 부흥을 다시 목격했던 하나님 선민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묘사했다. 사람들은 냉소적이고 독선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하나님을 회피했다.
메시아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 창조로 시작하는 구약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로 끝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사실이다.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구절을 보라. 이것이 축복으로 끝나는 신약의 마지막 구절과 얼마나 대조를 이루는지 주목하라.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계 22:21).
아브라함에서 말라기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진리가 허구보다 더 낯설다”라는 속담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우리의 개인사는 어떤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불변하시는 분인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변덕을 부리지 않는가? 하나님은 여전히 이적을 행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적을 체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투덜거리지 않는가?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여전히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씀을 듣거나 읽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쉽게 배울 수도 있고 어렵게 배울 수도 있다. 이것을 어렵게 배워야 했던 사람들을 통해 쉽게 배울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항과 거역의 길을 걸으며 어렵게 배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통해 유익을 얻으며 쉽게 배울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쉽게 배우든 어렵게 배우든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