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파노라마
성경골격

역사서 설명

구약의 역사서(여호수아서에서 에스더서까지)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한 민족의 이야기 안에서 ‘어떤 식으로 구현되었는지’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뀜)을 이방 민족 가운데서 택해 최초의 히브리인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 자신이 인간들에게 어떤 삶을 바라는지 보여주고자 하셨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우수해서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것일까? 바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롬 4:13-25). 아브라함은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義)로 여기심과 받아주심’을 위로부터 오는 선물로 받았다(창 15: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불러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이방 민족들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소금’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속담은 절반만 들어맞는다.

말의 먹이에 소금을 넣어 갈증이 생기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가장 위대한 교사이신 하나님께서 학생들(이방 민족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시청각 자료로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이방 민족들이 갈증을 이기지 못해 제 발로 하나님을 찾아올 테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민족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들은 이방 민족들 앞에서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그들의 관례로 삼고, 율법을 그들의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독특한 특질을 만들어놓으셨는데, 이방 민족들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히브리 민족의 삶을 보면서 이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을 편애하신 게 아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들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의욕적으로 믿도록 하기 위해 히브리 민족을 사용하신 것이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었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이스라엘(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 효과를 입증하기도 했지만, 불신앙과 반항을 거듭하며 제 길을 고집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중한 교사이셨기 때문에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 백성들로 인해 자신의 성품을 오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지만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불의를 눈감아주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그릇된 길로 갈 때마다 징벌하셨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의 길로 걸어갈 때엔 축복을 받지만, 불순종과 불신앙의 길로 걸어갈 때 징벌을 받는 것을 분명히 목격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속한 우리도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걸어가면 축복을 받지만 불순종과 불신앙의 길을 걸어가면 징벌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증인들이다. 어떤 증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몫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장차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기념물이 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공적(功績)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믿음과 순종을 향해 나아갔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는 삶을 되풀이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도록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공급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냥 그 모든 것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큰 이적을 베풀어주시자마자 거역의 길을 걷곤 했다. 혹시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한심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사실 나는 처음 믿기 시작할 때,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척 딱하게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어제 강력한 이적을 베풀어주셨다고 해도 바로 오늘 투덜거리며 불평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크리스천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産物)이자 세상의 소금으로서 세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저 믿고 순종하면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일까?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순종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 믿음을 촉구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순종을 요구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