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명백한 기대로 구약을 끝맺는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읽는다고 해도 구약의 이야기가 말라기서에서 끝나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선지자이며, 완전한 제사장이며, 완전한 왕이신 분을 약속받았지만 그분은 아직 오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반하는 일들만 거세게 일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이 이 세 직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까?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동안 ‘침묵기’(혹은 신구약 중간기)가 흐른다. 이 기간에는 선지자들이 출현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실로 어두운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이 주인공의 오심을 선포하고 또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공이 실제로 등장하면서 신약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의 사촌인 세례 요한은 그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힘썼고, 그분이 세상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성육신’(成肉身)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성육신’(Incarnation)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을 말한다. ‘면’ 없는 칼국수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 없는 성육신은 생각할 수 없다. 무한하신 분이 사람의 아기가 되셨다. 시간을 존재하게 하신 분이 시간 안에서 태어나셨다.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신 그분은 하나님의 성품과 메시지를 완벽하게 나타내셨다.
그분은 인간들을 대신하여 ‘죽기 위해’ 인간이 되셔야 했다. 하나님은 죽음이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인간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하나님이셔야 했다. 인간은 자신의 죄 값을 치를 만큼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예수님이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느냐고 내게 묻지 말라.
나는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믿을 뿐이다. 그것은 이성(理性)에 반할는지 모르지만 성경이 명백히 계시한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머리로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오묘함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인간이나 위대한 스승 정도로 여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분께서 말과 행동으로 완전한 신성(神性)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의 주장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못한 분이라면 그분은 거짓말쟁이이거나 정신병자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그분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믿기로 결단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분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