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성경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주의를 끄는 책이라고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하면 ‘666, 아마겟돈, 짐승의 표, 용, 천년왕국, 7년 대환란’ 등이 먼저 떠오릅니다. 상당히 무섭고 두려운 책이라고 여기며 부정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승리자이며, 구주이며, 빛나는 위엄을 가진 아름다운 영광의 왕이심을 소개합니다(1:9-20).
이후에는 놀라운 영광의 왕에게 경배하는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4개의 생물과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 많은 천사들의 노래, 하늘과 땅 위, 땅 아래와 바다 위의 모든 피조물이 찬양하는 모습이지요.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나열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아닙니다. 계시록은 상징적, 은유적, 비유적입니다. 마치 정교한 암호문과 같습니다. 색깔과 동물, 때로는 사람과 동물 등을 사용합니다. 상징적 숫자도 등장합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이 같은 형식이 익숙했습니다. 오늘날의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것이 이 장르에 해당합니다.
계시록의 구조는 1장 1-3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장은 ‘요한이 본 일,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 나옵니다. 머리말(1:1-3), 삼위일체의 하나님(1:4-8), 영광의 예수님(1:9-20) 이 부분은 실제로 2,3장을 위한 도입부입니다. 3장 22절에 가서야 끝이 나는 하나의 문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2장-3장은 ‘이제 있는 일, 일곱 교회에 있을 일들’이 나옵니다. 2장과 3장은 독립된 게 아니라 계시록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정한 형식으로 예수님의 이름, 칭찬과 책망,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일 것,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들이 열거됩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는 오늘의 교회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4장 이후는 ‘장차 될 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시간 순이 아니라 책의 기록을 위한 순서에 의해 쓰인 미래의 일입니다.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가 역사의 일곱 시대를 구분한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그의 경륜과 섭리를 통해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파트너로서 교회를 두셨지요.
계시록을 볼 때 다니엘서와 에스겔서를 함께 본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환란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격려를 줍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심한 핍박을 받는 중에 소련의 지하교회가 받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이미 승리했다. 곧 나의 구원을 나타낼 것이다”라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소련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벨론 포로 중의 그리스도인들이 에스겔과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듯이 로마의 핍박 중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믿음으로 고난 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이 중심에 있습니다. 계시록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 개념인 크로노스Kronos가 아니라 중요한 순간이나 변화의 계기가 되는 때인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종말의 때는 언제, 몇 시 등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경륜의 때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세례 요한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의 ‘때’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를 가리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로 형성되고 하나님의 일을 믿고 받아들일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 이루어질 때를 말하지요.
요한계시록에는 시편과 더불어 많은 찬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은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지요. 요한계시록은 크게 일곱 개의 찬양으로 나뉩니다.
1. ‘창조의 노래’입니다(4:10,11).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구속의 노래’입니다(5:8-14).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 삼으심을 노래합니다.
3. ‘구원의 노래’입니다(7:9-12). 온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서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아름답고, 찬란하고 웅장하게 찬송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가 종려가지를 들고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서서 구원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세계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보여줍니다.
4. ‘승리의 노래’입니다(12:10-12). 전쟁이 그치고 모든 어둠의 영이 패배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어린양의 십자가로 승리한 것을 노래합니다.
5. ‘모세의 노래’ 혹은 ‘ ‘어린양의 노래’라고 말합니다(15:2-4). 복음 전파의 결과로 모든 족속들이 주께로 나아와 경배하며 노래합니다.
6. ‘역사의 종말에 관한 노래’입니다(19:1-5). 이 세상을 대표하는 바벨론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이 다 무너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그분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노래합니다.
7. ‘어린양의 혼인잔치 노래’입니다(19:6-10). 역사가 끝난 후 영원한 나라의 시작에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전체가 7막 7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오페라와도 같습니다. 극적인 평행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요.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의 종말론적인 관점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본격적인 무대인 4장과 5장은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어둠과 심판과 환란과 고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좌에 영광 가운데 앉아 계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무대인 21장과 22장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 영광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충만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과 구원, 그리고 모든 믿는 자가 이 땅에서 놀랍게 회복되며 구원받는 것을 노래함으로 충만합니다. 반면에 어둠의 영은 완전히 무너져 멸망 속으로 들어갈 것을 말합니다.
2장과 3장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설명하는데 이것은 모든 역사 안에 있는 교회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중에서도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이 없고,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책망이 없습니다.
● 에베소교회, 처음 행위를 가지라(2:1-7).
● 서머나교회, 죽도록 충성하라(2:8-11).
● 버가모교회, 회개하라(2:12-17).
● 두아디라교회,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2:18-29).
● 사데교회, 남은 것을 굳게 하라(3:1-6).
● 빌라델비아교회, 네 가진 것을 굳게 하라(3:7-13).
● 라오디게아교회, 금, 흰 옷, 안약을 사라(3:14-22).
마태복음에 나오는 팔복처럼 계시록에는 일곱 가지 복이 있습니다.
1.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1:3).
2. 주 안에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14:13).
3.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16:15).
4.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19:9).
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20:6).
6.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22:7).
7.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22:14).
또한 계시록에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 3-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며 또한 완전수.
● 4-땅의 동서남북 끝의 네 모퉁이를 의미하며 전체수.
● 7-주께서 모든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셨던 날로 성취의 수.
● 10-완전수.
● 12-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며,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
● 1,000-남은 수로, 이 땅에서 구원받은 셀 수 없는 큰 무리.
7년 대환란과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믿는 자의 영원한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계시록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첫 번째는 과거주의적 관점입니다. 계시록의 모든 사건을 로마 대제국 시대 때 이미 성취되었다고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관점입니다. 계시록은 초대교회 때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까지 이르는 교회 역사의 파노라마라고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 관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실제가 아니라 표현이며, 선과 악의 영적전쟁에 대한 상징적 묘사라는 관점입니다.
네 번째는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계시록 전체는 마지막 시대 때 발생할 미래의 사건에 대한 서술이라고 봅니다.
이 네 가지의 관점에 따라서 천년왕국이 언제 일어나며,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 전 천 년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도 전 천 년 전 환란설과 전 천 년 후 환란설로 나눠집니다.
-전 천 년 전 환란설
주의 재림 전에 7년 대환란이 있고, 재림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이며, 그 후에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는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전 천 년 후 환란설
재림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있고, 천 년이 끝나면 7년의 대환란이 있고, 그 후에 주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이후에 영원한 주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또 다른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 후 천 년설: 천년왕국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합니다. 재림 전에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천 년간의 기간이 있다가 재림 이후에 심판이 있고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시간 개념의 천 년을 말합니다. 과거주의적 관점 또는 역사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지요.
● 무 천 년설: 천년왕국은 따로 없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가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문자적 의미의 천 년이라는 기간의 왕국은 의미가 없으며, 천년왕국은 단지 영적 의미이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를 천 년으로 보고 주께서 재림하신 후에는 심판과 함께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는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를 잘 보여줍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 나타나는 공포와 심판과 짐승에 대한 것이 중심이 아니라 구분의 때를 말합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 오르는가 하면 가장 깊은 지옥의 심연에 떨어집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사탄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를 믿는 교회에게는 영원의 시작이며, 사탄에게는 마지막입니다.
계시록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과 승리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이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시험과 고통을 이기고 인내로써 하늘의 영광을 기다리게 해줍니다. 지옥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가 중심인 천국 또한 사실입니다.
계시록을 바라볼 때마다 가장 크게 보아야 하는 것은 하늘이 열리고 영광의 하나님과 영광의 예수님 그리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어둠의 영은 반드시 패배하여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믿는 자는 다 주와 함께 영원히 영광 가운데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