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신약

64. 요한일서 : 사귐의 기쁨

요한일서는 특정한 개인이나 교회에게 쓴 게 아니라 마치 본부에서 전체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양 떼를 향한 목자의 마음이 담긴 설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스도인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배려로 가득합니다.

이 책의 매우 이례적인 요소는 개인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기록자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히브리서와 요한일서뿐이지요. 서신서이지만 발신인과 수신인과 인사말 등 서신서다운 요소가 없습니다. 기록된 연대는 A.D.100년경으로 초대교회를 지난 제2,3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주님에 대한 열정이 약해지고 또한 거짓 교사들에 의한 그노시스주의로 인해 교회 내에 어려움이 있을 때입니다.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온다”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신학 논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확신을 ‘안다’라는 단어로 치환하여 35번 언급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특히 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씀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순종의 삶을 살며, 세상적인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강력히 거절하라고 합니다.

요한일서는 요한복음과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요한복음이 복음을 소개하며 복음 전도가 중심이라면(요 3:16), 요한일서는 믿는 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3:16). 요한복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게 주 내용이라면, 요한일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가 주요한 메시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요한일서는 그분의 인성에 초점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이 수직적인 관점으로 위로부터 오신 예수를 소개한다면, 요한일서는 수평적인 관점으로 그리스도인이 사랑 가운데 서로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빛이신 하나님

요한일서의 중심은 ‘빛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빛 가운데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 가운데 교제하고, 원망과 미움이 없이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면서 사는 교제의 삶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그 사랑 안에서 살고 사랑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는 ‘만약’if이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하며 우리의 신앙을 바로잡습니다.

1.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며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는 게 아닙니다(1:6).
2.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습니다(1:8).
3.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1:9).
4.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했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입니다(1:10).
5.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2:1).

또한 믿는 자들의 믿음의 기반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지 마십시오.
둘째,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지십시오. 영성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사람들과 분리되어 독립적 혹은 고립적으로 생활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사귐 공동체

1장 1절-2장 2절에는 ‘사귐의 길’을 말씀합니다. 이 내용들은 요한복음 1장 1-18절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말한다면,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믿는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귐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1장 1-3절은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심 동사는 ‘전함’입니다. 이것은 요한일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요한일서는 이 세상에 오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와 교제의 기쁨으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는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사귐이 있다는 의미입니다(한자로 교회의 ‘교’는 ‘가르칠 교’敎가 아니라 ‘교제할 교’交로 표기해야 의미가 가장 잘 표현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께 모여 기쁨의 사귐을 가지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1:4-10).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고백 공동체가 되어 죄를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이 있고, 또한 믿는 자들 간의 죄의 고백이 있습니다. 어떤 죄는 하나님 앞에서만 고백해야 하는 것이 있고, 어떤 경우는 서로에게 고백하는 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믿는 자가 서로의 관계에서 용서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서로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관계에서의 기쁨이 있게 됩니다.

죄의 고백과 자유함

1장 8절-2장 2절과 3장 6-9절, 이 두 구절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는 의견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 상반된 게 아니라 균형을 이루고 극단적인 견해에서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한 면은 신학적이고, 다른 면은 윤리적입니다.

1장 8절-2장 2절의 말씀은 죄에 대한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로잡습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나 책임 회피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결하는 길은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실제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라고 하십니다(롬 3:9-18,23). 죄를 짓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습니다. 죄인 된 사람은 죄를 짓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구원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보혜사(대언자,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어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는 변호사 역할을 하시는 분 같습니다.

3장 6-9절의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은 습관적으로 반복하여 짓는 죄의 행위를 말합니다. 죄를 짓고도 돌이킬 마음이 없는 태도와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의적이며 상습적으로 죄를 지을 수가 없으며, 죄를 생활습관이나 생활방식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도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죄의 분위기 속에서 일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형벌에서 자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롬 3:24).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우며 성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죄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구원은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지만 성화되어 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삶의 대가를 지불하며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우리의 힘으로 거룩함에 이르고자 한다면 육신에 지배를 받게 되어 육체의 일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아서 인도함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갈 5:15-24).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절대로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상습적이고 고의적으로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 성숙의 단계

2장 12-14절은 영적 성숙의 단계의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는 죄사함을 알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압니다. 영적인 청년은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여 강하고 결국은 승리합니다. 영적인 아비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압니다.

1장 5절-2장 27절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게 나타나는 일곱 가지 증거들이 있습니다.
1. 고백 공동체(1:5-9), 죄를 지속적으로 고백합니다.
2. 말씀 순종 공동체(2:3-6),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3. 사랑 공동체(2:7-11), 서로 사랑합니다.
4. 승리 공동체(2:12-14), 죄를 이기는 삶을 삽니다.
5. 거룩함의 공동체(2:15-17),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6. 코이노니아 공동체(2:19), 서로 사귐이 있습니다.
7. 성령 공동체(2:20-27), 선생이신 성령으로 진리를 압니다.

4장 10절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람이 신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롬 5:8). 기독교의 영광스러운 진리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시어 우리가 주도적으로 변화되도록 우리를 만나십니다.

5장 1-5절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1절). 하나님의 자녀 즉 그리스도인을 사랑합니다(2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나타냅니다(4:20,2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2,3절). 믿음으로 세상을 이깁니다(4,5절).

6-8절에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심의 세 영역을 말합니다. 물은 예수님의 사람으로 오심을,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성령은 예수님께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을 나타냅니다.

13-20절에 믿는 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사실을 알고 확신을 가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1.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음을 확신합니다(13절).
2. 하나님이 믿는 자의 기도를 들으심을 확신합니다(14절).
3. 하나님이 믿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셨음을 확신합니다(15절).
4. 믿는 자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음을 확신합니다(18절). 죄에 패배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5. 믿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확신합니다(19절). 그러므로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 편에 서 있습니다.
6. 믿는 자는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다. 그가 참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압니다(20절).
7. 믿는 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압니다(20절). 진리에 대해 추측하지 않고 확신을 가집니다. 추측이 사라지고 확신하는 지식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는지 알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