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신약

52. 빌립보서 : 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립보서는 ‘기쁨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책’입니다. 수신자인 빌립보교회는 빌립보 도시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빌립이 건설한 도시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빌립보교회

바울의 계획은 아시아로 가는 것인데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통해 계획을 변경하여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빌립보입니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울 팀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교회가 형성되었지요. 그들이 감옥에 갇혀서 심한 고난을 당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 자주(紫紬) 장사 루디아는 아시아 사람으로 상인입니다. 자주 장사는 자주색으로 물감 들인 옷감을 파는 것으로 당시 가장 성행하던 사업이었죠. 루디아는 보따리 장사꾼이 아니라 매우 성공한 사업가로 상류층에 속했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를 심하게 때렸던 로마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정도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는 로마 군인으로 당시 사회의 중류층에 속한 자입니다. 또 점占치던 여자가 바울을 통해 자유케 되면서 예수를 믿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지요. 그녀는 헬라인이며 노예로 당시 사회의 하류층이었지요. 이처럼 빌립보교회는 다양한 국적과 사회 계층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졌습니다.

기뻐하라

빌립보서는 반복적으로 ‘기뻐하라’라고 말합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빌립보 성도들이 “기뻐하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내하십시오”라고 편지해야 할 텐데 오히려 감옥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의 형제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기쁨은 환경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바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그 영은 늘 자유했습니다.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하늘의 기쁨을 유지한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기쁨으로 살라는 게 빌립보서의 내용입니다.

구약의 하박국서 3장 17-19절의 말씀이 이러한 삶을 잘 보여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쁨은 환경이나 물질이나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라고 했습니다(느 8:10). 바울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기쁨이었기 때문이지요.

빌립보서는 이 기쁨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서 형제들을 위해 기도할 때 기쁩니다(1:4).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형제들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슬픔이나 우울함이나 어두운 얼굴이 아니라 어떤 삶과 환경에서든지 빛나는 기쁨의 얼굴로 살아가야 합니다(1:25).

또 모든 성도가 서로 하나가 되어서 교제하는 기쁨이 있습니다(2:2). 그러한 교제는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1:3,4).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 또한 기쁨입니다(2:17).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자 믿음의 사람인 폴리캅Polycarp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화형을 당하면서 “오 아버지! 나를 이 일에 적합한 자로 판단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순교의 기쁨을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로 그런 기쁨을 말합니다.

또한 2장 28절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의 기쁨을 말합니다. 잠언 25장 25절에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하는 기쁨과 같습니다. 2장 29절은 늘 집을 개방해서 많은 손님들과 나그네들을 접대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3장 1절과 4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는 자가 서로 교제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4장 10-12절에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워서 비천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울하거나 얼굴이 어둡고 슬픔과 번민으로 살아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환경을 뛰어넘어 하늘의 기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롤모델인 놀라우신 예수님

빌립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인성을 보여주는 가장 뛰어나고 감동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바울은 빌립보 형제들에게 하나 됨을 권면했습니다. 그들 사이의 불일치와 부조화, 개인적인 야심과 자랑을 버리고 다툼과 허영이 아닌 겸손으로 서로를 섬기라고 했습니다(2:1-4).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예수님의 본질은 하나님이시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의 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취하다’는 ‘움켜쥐다,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동등 됨을 움켜잡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신성을 비우시고 노예의 형체를 가지셨지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지만 잠시 온전히 사람이 되신 것이지요. 외견상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와 감정과 피곤함과 굶주림 등을 그대로 겪으셨지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을 취하시는 것은 엄청난 희생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놀라운 일은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한마디로 ‘겸손’과 ‘복종’과 ‘희생’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셨습니다. 자신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영광을 사람을 위해 버리셨습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롤모델이십니다. 이기주의, 자기 주장, 자기 과시, 자기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파괴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데 있습니다.

두 장의 추천서

빌립보서에는 두 장의 추천서가 있습니다. 2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추천합니다(2:19-25). 먼저 디모데를 소개합니다. “디모데 형제는 뜻을 같이하여 여러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지만 디모데 형제는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연단된 사람입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통과한 사람입니다. 또한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입니다.”

이어서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지요. “에바브로디도 형제는 나의 형제요 나와 함께 주를 위해 수고하고 나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 된 자입니다. 에바브로디도 형제는 여러분의 사자로 내 쓸 것을 돕는 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서는 죽기까지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 대한 추천서를 써준다면 어떻게 써 있기를 바라나요? 또 어떻게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주께서는 우리가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처럼 그런 소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라고 말합니다(2:29). 이러한 사람들을 존경하라는 것이지요. 이들은 존경받기에 합당합니다. 주변에 존경할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오, 주님, 이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또 바울은 자기 자신을 추천합니다(3:4-9).

“만일 누군가 육체를 자랑한다면 나도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입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깁니다.”

이것은 빌립보서에서 가장 놀라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범적인 표현이지요.

3장 13,14절은 바울의 사명선언문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을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것을 우리의 사명선언문으로 삼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다음의 약속의 말씀을 내 것으로 굳게 붙드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1:6).

그리고 다음 말씀을 내 고백으로 선포하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4:19).

기쁨과 평강의 비결

바울은 또한 “나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합니다(4:11,12). 재물과 연관되어서 자족하는 삶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빚지지 않고 진정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4장 6-9절에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평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말합니다. 내면에 평상심을 유지할 때 분별력과 판단력과 이해력과 통찰력이 발휘되어 옳게 행동할 수 있지요.

이러한 기쁨과 평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첫 번째, 내 생각을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는 데 있습니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4:8).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합니다. 즉 이것들을 내 생각에 머물게 하라는 것입니다. 위의 여덟 가지 요소가 있는 것들만 내 생각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듣거나 볼 때 여과 없이 다 받아들이지 말고, 여과지로 걸러내는 것처럼 내 생각에 위의 요소들을 올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오직 이것들만 들어와 머물도록 할 때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기쁨과 평강을 유지하는 두 번째 비결은 감사의 기도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아무것도’와 ‘모든 일’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감사와 기도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