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구약

32. 오바댜 : 에돔의 멸망

오바댜서는 1장 21절로 구약에서 가장 짧습니다. 아주 중요한 에돔의 멸망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항상 유다를 미워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고 멸망시키려 할 때 에돔은 바벨론 편에서 유다의 멸망을 도왔습니다. 극심한 환난의 날에 유다는 형제 나라인 에돔에게 도움을 기대했지만 그들은 방관했고, 더 나아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도와주며 기뻐했습니다. 이러한 에돔에 대해 멸망의 심판을 선포하는 게 바로 오바댜서입니다.

표제는 1절에 있듯이 ‘오바댜의 묵시’입니다. 오바댜가 누구인지는 성경에 언급되지 않습니다. 묵시는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신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만을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메시지 전달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요. 오바댜는 에돔의 죄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에돔에 대한 심판의 이유

에돔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전령관들을 나라들에게 보내셨습니다.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함께 나가서 에돔과 싸우라”(1절). 에돔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여 작은 나라로 전락할 것입니다(2절).

에돔에 대한 심판의 첫 번째 이유는 교만이었습니다(3절). 그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를 의지하며 교만히 행했습니다.

1. 에돔은 높은 지역에 위치했습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천연의 요새에 살았지요. 그래서 절대 함락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끌어내리십니다(4절). 교만하면 스스로를 높이다 안일한 생각에 빠집니다.
2. 부와 재물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6절).
3. 주변국들과의 동맹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에돔의 환난의 날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7절).
4. 모사들의 책략을 믿었습니다(8절). 그러나 그들의 책략은 어리석어서 실패할 것입니다.
5. 그들의 용사들을 믿었습니다(9절). 그러나 용사들도 사기를 잃고 전투에서 패배할 것입니다. 결국 에돔은 더 죽임을 당하여 멸절될 것입니다.

에돔의 심각한 두 번째 죄는 형제가 환난을 당할 때 방관하고, 기뻐하고,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벨론을 도와서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일에 가담했지요.
11-14절은 에돔의 죄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가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11절). 그러면서 에돔이 해서는 안 되는 여덟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네 형제가 재앙을 만날 때 방관할 것이 아니라.
2. 네 형제 유다 자손이 패망하던 날에 네가 기뻐할 것이 아니라.
3. 형제의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4. 내 백성이 환난 당할 때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말 것이라.
5.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말라.
6.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말라.
7. 네거리에 서서 도망하는 자를 막지 말라.
8. 고난의 날에 남은 자를 원수에게 넘기지 말라.

실제로 에돔은 이 모든 것을 어기고 형제 나라인 유다 왕국이 환난 당할 때 외면하며 오히려 그들의 재물을 탈취하고 원수와 협조하여 멸망을 도왔습니다.

15절에 하나님은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17-21절에서 그의 백성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 당할 때 그것을 도왔던 에돔은 동일하게 멸망할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회복시키셔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회복의 약속

이 말씀은 창세기 14장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조카 롯이 당시 근동 전쟁에 휩싸여서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곧바로 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붙잡혀 있는 롯을 건져냅니다.

아마 이웃 사람들이 이렇게 말렸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만이라도 전쟁 중에 무사한 것을 감사하십시오. 어떻게 저 큰 연합군과 상대해 민간인인 당신이 싸워서 조카를 구원하겠다고 말합니까?”, “가서 도울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혹 아브라함도 속으로 롯의 고난을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뭐라 그랬냐? 전부터 그곳은 올바른 땅이 아니라고 했지? 그렇게 하나님의 뜻 바깥에 살고 있으니까 어려움을 당하지.’ 이렇게 롯이 어려움을 당하는 원인만 분석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원인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이 만류하는 것도 다 뿌리치고,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오직 환난 중에 있는 조카를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갑니다. 그는 형제의 어려움을 방관하지도, 뒤에서 판단하며 원인만을 따지고 있지도 않았지요. 더구나 조롱이나 비방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환난 중에 있는 형제를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귀하게 여기시고,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지요. 형제가 고난 당할 때 생명을 걸고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방관하거나, 판단하거나, 원인을 분석하거나, 비방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희생을 다해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돕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을 감당할 힘이 있는지 없는지 계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도와주는 게 아름답습니다.

오늘날처럼 이웃과 형제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오바댜서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