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구약

29. 호세아 : 하나님의 사랑

이 책을 기록한 사람은 선지자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와 여호수아는 원래 같은 이름으로, 그 뜻은 ‘구원’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품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아모스와 동시대 사람으로 미가보다 연장자이고, 이사야와는 비슷한 연배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지요.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지켜보며 통곡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남유다에게 경고를 주는 데 사용됩니다.

호세아서의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백성이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면 주님의 축복으로 그들이 회복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이하게도 하나님께서 호세아 개인의 가정을 예증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고멜을 향한 호세아의 사랑

1장-3장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호세아가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는 내용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둘 사이에 태어난 세 아이들의 이름을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의미를 담아 짓게 하십니다.

첫째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흩어 뿌리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심각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앗수르 왕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 온 앗수르 제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둘째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셋째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히브리어에서 ‘로-’는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시고 회복시킬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세 아이의 이름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첫째 ‘이스르엘’은 ‘이스라엘’로, 둘째 ‘로루하마’는 ‘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던 자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는 뜻으로, 셋째 ‘로암미’는 ‘암미’로,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가 내 백성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

2장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과정을 말해줍니다. 6절에 하나님께서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키도록 가시로 그 길을 막으십니다.

환경적으로 힘든 고통 때문에라도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담을 쌓아서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데까지 가게 하셔서 결국 절망 속에서 주의 은혜를 구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15절에 하나님은 백성을 광야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힘들고, 두렵고, 불안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거친 땅입니다.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아골 골짜기는 ‘환난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를 떠나서 제멋대로 살며, 방황하며, 환난 속에 살지만 긍휼히 여기셔서 절망을 놀랍게도 소망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바꾸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장가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말씀하심으로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은 결심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19,20).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고 회복시키시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주변국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 책망하시면서 남편을 버리고 떠난 아내과 똑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길 원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2:23).

3장에서 호세아는 그를 떠났던 부정한 아내를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사서 다시 데려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동맹국들을 신뢰했습니다. 이에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방국가들과 동맹을 맺으며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절개를 팔고 창녀 노릇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이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뿌리를 뽑아 이방 땅 앗수르에 흩뿌리실 것입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금 포로에서 돌이켜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4장-14장은 하나님의 모습을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4장-7장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주께서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살아야 된다고 촉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죄의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삶에서 돌이켜 돌아오며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6장 3절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4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하십니다.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상태를 네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달궈진 화덕’과 같다고 하십니다(4절). 이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해줍니다.

두 번째는 마치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고 하십니다(8절). 빵을 한쪽으로만 구우면 그쪽은 타버리고, 다른 쪽은 덜 익어서 못 먹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상태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로 ‘어리석은 비둘기’ 같다고 말씀하십니다(11절). 비둘기는 원래 자기 집을 잘 찾아가지만 어리석은 비둘기는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데 이방 국가들에게로 간 이스라엘을 잘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네 번째는 ‘속이는 활’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16절). 처음에는 과녁을 잘 맞추었지만 마지막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쏘는 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이방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을 잘 보여주지요.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이들이 모든 죄를 다 회개하고 돌이켜 돌아오기를 요청하십니다.

8장-10장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죄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들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8:7). 헛된 것을 심었더니 더 큰 헛된 삶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백성들은 ‘나라들 사이에 방랑자들’이 될 것이고, 그들의 왕통王統은 끊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두 마음이 아닌 오직 한 마음을 품기를 원하십니다.

11장-13장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떠난 삶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십니다. “내가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다”라고 하십니다(11:4).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넘어지면 팔로 안아서 치료해주시는 부드러운 사랑의 아버지로 보여주십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시듯(11:8), 우리가 죄를 지으면 화를 내시기보다는 함께 마음으로 아파하시며 돌봐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12장-13장에서 에브라임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풍요 속에 젖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능력으로 부를 모았다고 교만해지고, 더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재물로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회개하는 자에 대한 풍성한 약속

14장의 어조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앞에서 죄에 대한 책망과 진노와 경고를 말했다면 이 장은 회개의 권면과 긍휼로 인한 회복의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자들을 위한 지침서와 같습니다. 죄사함과 용서해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입술로 죄를 모두 자백함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14장 5-8절은 우리를 어떻게 회복시켜주실지를 열거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로 더 빠져들어 점점 더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주께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큰 축복과 풍성한 열매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우리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호세아서에서는 끊임없이 범죄한 백성을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계속 기회를 주시고,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며 결국에는 큰 축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