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B.C.3세기까지 전해진 강력한 이론은 예레미야라는 것입니다. 또한 70인역 성경은 예레미야애가를 번역하면서 1장 1절을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고 예루살렘이 황폐화되자 예레미야가 앉아서 울며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애곡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패망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분명하며 예레미야가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이스라엘 상가喪家에서 불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시온의 딸의 죽음, 즉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함락을 탄식하는 내용입니다.
애가는 수난 당하는 교회를 향한 탄식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고백입니다. 죄의 결과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3:22,23),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5:19-21).
화란어성경NBV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은 그 문학적인 형식과 언어 선택에 있어서 매우 우아하여 가장 뛰어난 이교도 작가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다.”
내용 면에서도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서와 유사점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의 부록’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예레미야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그것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예레미야가 재앙의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러 차례 표현한 것이 진심이었고,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마음이 몹시 아팠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요.
왜냐하면 바벨론에게 빨리 항복하고 포로로 가는 것이 더 좋다는 예레미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에 그가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인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 겪는 예레미야의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난을 멀리서 미리 보고 지은 게 아니라, 그것이 닥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는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들의 반역, 이로 인한 선지자의 슬픈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한 심판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슬픔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재앙들을 보며 차라리 그의 머리가 물이 되고, 그의 눈은 눈물의 근원이 되기를 바랐습니다(렘 9:1). 재난이 막상 닥치자 예레미야는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1장 1절과 2장 1절, 그리고 4장 1절에 “슬프다”라는 고백으로 애통함을 표현했지요. 또한 1장 9절에 “여호와여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장 20절과 2장 20절에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라고 거듭 고백합니다. 예레미야의 원수들은 그가 변절하여 조국을 배신했다고 비난했지만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그에게 누구보다도 나라와 민족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의 구성은 매우 독특합니다. 다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 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과 동일한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22절로 되어 있는데,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단어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절은 ‘알렙’, 두 번째 절은 ‘베트’, 이런 식으로 각 절마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첫 머리에 넣으면서 22절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3장은 특별히 66절로 3배가 기록되어 있는데, 세 절을 한 묶음으로 해서 그 첫 절을 알렙, 다시 두 번째 세 절을 또 묶어서 첫 절을 베트, 이런 식으로 모두 22개 알파벳이 각 3절씩 묶인 66절로 구성했습니다.
5장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묶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1장과 2장과 4장처럼 22절로 구성되었습니다. 처음 네 장은 시 형식, 마지막 장은 산문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119편도 이와 동일한 구성입니다. 8절을 한 묶음으로, 매 8절의 첫 번째 절을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여 모두 8절씩 22개로 묶은 것이지요.
이러한 구성은 내용을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 애곡을 위한 단가들을 쉽게 암기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에 시를 쓰는 데 익숙한 방식이었습니다.
애가는 고난 가운데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영적인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음 세대들에게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시온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보존하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그들은 애가를 통해 죄에 대해서는 애곡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회개하는 마음을 배워갑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장차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힘을 얻게 해주는 것이 애가의 큰 역할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가 겪는 고난들에 대해 올바른 슬픔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1장에서 예루살렘의 참상을 비통한 마음으로 슬퍼합니다. 당시 통탄스러운 상황을 예전의 영화로웠던 시절과 비교함으로 그 슬픔이 한층 더 깊어집니다. 참상의 원인인 죄를 고백하고 탄식하며 그들이 겪는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합니다. 또한 공의로 원수들을 심판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2장은 1장과 동일하게 알파벳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용도 거의 동일하며, “슬프다”로 시작합니다. 모든 재난의 원인은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깊이 통촉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장은 세 구절을 하나로 묶어 알파벳 순서로 했습니다. 특히 3장은 내용이 더 일반적이어서 개인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골방에서 개인의 상황에 적용하며 기도할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4장은 처음 두 장과 동일한 형태로 구성되어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도합니다. 5장은 1,2,4장과 동일한 절수로 구성되어 있지만 알파벳 시가 아닌 산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앞에 나온 모든 애가와 동일합니다. 재앙을 묘사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겸손히 탄원하며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