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구약

21.전도서 : 인생의 무가치함

1장 1절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전도서는 솔로몬이 노년에 생애를 돌아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의 출발은 좋았으나 말기에는 그의 이방 여인들에 의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왕상 11:1-13,33). 전도서를 쓸 당시에 각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줄었기 때문에 잠언 1장 1절의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과는 달리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이라고 소개했을 것입니다. 전도서는 세월이 전해주는 교훈이요, 연륜이 가르쳐주는 지혜입니다.

전도서는 한 편의 설교로 제목은 ‘해 아래서의 삶의 허무함’입니다. 허무함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부심foolish pride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공허함emptiness, 목적이 없는 삶futility을 말합니다. 전도서의 중요한 단어는 거의 50번 가까이 기록되어 있는 ‘지혜’ 또는 ‘지혜로움’입니다. 또한 37번 기록한 ‘헛되고’라는 단어와 31번 언급한 ‘해 아래에서’입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는 서로 다릅니다. 잠언의 지혜는 해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전도서의 지혜는 해 아래에 있는 인간의 지혜를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에서는 경건에 이르는 지혜요, 전도서에서는 단지 아는 것에 이르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단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고 갈급하게 하여 인간이 어떻게 하면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2:1,13)로 끝맺습니다.

전도서는 참회의 설교입니다. 다윗의 몇몇 참회의 시와 성격이 같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이 세상의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 만족을 얻길 바랐지만 그것은 죽음보다 더 쓰며, 결국 어리석은 짓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형편없이 연약한 자인지를 철저히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크신 은혜와 긍휼로 그러한 사람이라도 용서하시며 깨끗하게 하십니다.

놀라운 지혜

전도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1장-6장에서 인간은 참된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애쓰지만 그 노력이 부질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합니다.

7장 1절-11장 8절에서는 헛된 것에 대한 조언을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처신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또한 온갖 유혹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해독제는 오직 지혜뿐이기에 그것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1장 9절-12장 14절에서 가장 놀라운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참된 행복과 만족을 위해 지혜와 쾌락을 추구하지만 해 아래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또한 운명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되다

“하나님이 없는 쾌락과(2:1,2)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수고는(2:20-23) 헛되다. 하나님이 없는 목적과(2:26)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성공은(4:4) 허무하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욕심과(4:8) 명성과(4:16) 그리고 부 역시(5:10,11) 허무하다.”

사람의 삶이 헛된 이유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시험해보고, 선한 것을 인간의 지혜로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가져올 수 없고, 오직 사람에게 주는 참된 만족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솔로몬은 연구실과 도서관, 실험실과 회의실에서 인간의 행복을 찾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는 궁정에서 최고의 석학들과 교류하기도 하고 한량들과 어울려보기도 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과 멋있는 바bar나 클럽도 방문합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공원과 극장, 정원과 해변, 그리고 명승고적지에 가보아도 여전히 진정한 만족은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하나님 앞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은 그가 청년의 때에 머물던 장소였지요. 한참을 돌아서 다시 온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만족을 얻게 되었고, 자신처럼 헤매는 어리석은 자가 없도록 청년들에게 조언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청년들이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11장 9절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라고 말합니다.

12장 1,2절에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라고 말합니다.

12절에는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13절에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길 때 비로소 세상의 헛된 것들이 주는 괴로움과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처방한 치료제입니다.

참된 만족

결국 나이 많은 전도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이 땅에서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해도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잡은 것이 심히 많아서 그물이 찢어졌다고 한 고백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리 수고해도 헛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헛수고의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이후의 삶에는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1960년대 북미 대륙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히피hippie운동이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참된 행복과 만족을 구하며 마약과 성과 각종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려고 사방을 헤맸습니다. 심지어 북인도의 히말라야 깊은 산중까지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찾아 오셨습니다. 그후 엄청난 ‘지저스 피플Jesus People 운동’이 북미 대륙을 휩쓸면서 많은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중 한 자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부른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겨주시리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_ 리처드 블랭카드, 〈우물가의 여인처럼〉

이 자매의 고백이 곧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어떻게 행복을 찾을 것인가, 참된 만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디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는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면 얻을 줄을 알았지만 그 길의 끝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절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고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을 때 단순히 절망에 이르는 게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목마를 때 물을 찾고, 배고플 때 음식을 찾듯이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세 번의 후렴구가 반복됩니다. 전도서도 후렴구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지요(2:24-26, 3:12-15, 3:22, 5:18-20, 8:15, 9:7-10, 11:7-10). “먹으라 마시라 즐기라 누리라 수고하라 선을 행하라”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말합니다. “이보다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는 줄 내가 알았다.” 이 모든 여행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의 고백이 더 충격입니다. “기쁘고 기쁘도다 모든 것이 기쁘도다”라고 하지 않고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12:8)라고 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를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회피하거나 세상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자살이나 쾌락으로 나아가게 하는 절망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마지막의 고백은 우리로 더 놀라운 고백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2: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만족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만나니 만족합니다. 내가 찾던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만이 비로소 참된 만족과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