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관통100일통독
말씀관통100일통독_구약

5. 민수기 : 광야의 체험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출발해서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의 여행 경로를 설명합니다. 그들이 어느 광야의 루트를 통해서 갔으며, 그때 어떤 상황들이 있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민수기는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광야 여정

이스라엘 백성이 정월 15일에 곧 유월절 다음날에 애굽의 라암셋에서 출발하여(출 12:37, 민 33:3) 숙곳을 지나 홍해에 이르고(출 14장), 홍해를 건너, 마라와 엘림과 신 광야를 거쳐(출 15:22-18:27)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때가 셋째 달 첫날입니다(출 19:1,2). 유월절 다음날 라암셋을 출발하여 1개월 반이 걸려서 시내산에 도착한 셈입니다.

시내산에 도착해 11개월 19일을 머무릅니다(출 19:1-민 10:11). 그리고 시내산을 출발해 11일이 걸려 하세롯에 도착하고(민 11:34,35, 신 1:2), 그곳에서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가 가나안을 미리 정탐하도록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민 13장-14장, 신 2:7,14).

열 명의 믿음 없는 정탐꾼의 말을 듣고 낙망하고 원망하며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를 출발하여 에돔과 모압을 돌아다니면서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죽기까지 38년 동안 방황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제2세대와 함께 요단강 맞은편 지역인 모압 평지에 이르게 되지요. 애굽의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러 머물다가 가데스 바네아를 지나 모압 평지에 이르는 경로는 브이V자 형이었습니다.

1장 1절-10장 11절은 시내산에서 가나안으로 행진하기 전의 준비 과정입니다. 10장 12절-36장 13절은 시내산을 출발하여 가나안의 맞은편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약 38년의 광야 방황 과정입니다. 시내산을 출발해서 약속의 땅까지 가는 여정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안타깝게도 40년이나 걸렸습니다.

13장과 14장은 그 원인에 대해 잘 설명합니다.

시내산을 출발해 하세롯을 지나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머물면서 열두 명의 정탐꾼이 앞으로 들어갈 땅을 먼저 정탐하고자 했습니다.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그들은 그 땅이 어떠한지를 보고하기 위해 그곳에서 난 포도송이를 들고 와서 설명합니다.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두 명의 남자가 메고 와야 할 정도로 그곳은 아주 비옥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메고 온 포도송이를 보고, 그들의 첫 보고를 들으며 흥분하고 감격합니다.

이들이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13:26,27)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열두 명 중 열 명은 “그러나 우리는 그 땅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라고 하지요(13:28).

그들은 불가능한 세 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는 그 땅에 거인족인 아낙 자손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즉 신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군대이기에 전력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앞으로 정복해야 할 성읍들이 크고 견고하여 환경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무너진 여리고 성의 성벽 너비가 전차 두 대가 나란히 갈 만큼 넓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성읍들은 크고 견고했지요.

갈렙과 여호수아

열 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낙담하고 불평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갈렙이 강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3:30).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지요.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를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갈렙의 말이 옳다 하시고, 열 명의 정탐꾼들의 말이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갈렙의 말이 옳았을까요? 갈렙도 열 명의 정탐꾼처럼 그 땅의 아낙 자손들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또 그곳의 모든 군대와 무기도 보았고, 성읍들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지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갈렙은 이것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곳을 취할 수 있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환경이나 여건이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분의 능력으로 모든 말씀을 이루실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세상이 커 보이면 하나님은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세상은 작게 보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에게는 세상이 커 보였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지요.

하나님께서는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믿고 절망과 불평 가운데 있는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말과 믿음대로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만이 그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정탐했던 40일의 하루를 1년씩 계산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야 된다고도 하십니다. 그러나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의 믿음대로 죽지 않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지요.

민수기의 의미

광야를 지나면서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고린도전서 10장 1-13절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약속을 받고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목도하고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은 광야에서 멸망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음행하지 말자 …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7-11).

이들의 가장 주된 행위는 ‘원망’입니다. 음식과(11장) 물(20장), 길(21장) 때문에 악한 말로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엄격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거역’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에게(12장), 백성들이 아낙 자손으로 인해 모세와 아론에게(14장), 더 심한 것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250명의 리더들을 끌어들여 집단으로 모세와 아론을 거역한 것입니다(16장).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불신앙’입니다(13-14장). 그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요(히 3:7-4:11).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가운데서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지도자들인 모세와 아론의 중보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시 106:23).

여정의 원칙

1장에서 시내산을 출발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 인구를 조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26장에서 또 한 번 인구 조사를 합니다. 왜 두 번이나 인구 조사를 했을까요?

처음의 조사 대상은 애굽에서 나왔던 세대였지만 40년이 지나면서 그 세대는 다 죽고 다음 세대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장은 애굽에서 나왔던 세대를, 26장은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조사했습니다.

민수기는 애굽에서 나왔던 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가 요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줍니다.

‘환경을 보고 상황에 반응하며 살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살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영향을 주며 하나님나라를 이루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향을 주어야 할 세상은 매우 견고해서 오히려 그로부터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영향을 주며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부딪히는 현실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열 명의 정탐꾼처럼 반응하지 말고 갈렙처럼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주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갈렙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막

또한 민수기는 광야를 진행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보여줍니다. 모든 행진의 중심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법궤가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성막 위에 구름이 머물고, 그것이 움직일 때 성막도 함께 움직입니다. 성령과 말씀이 인도하는 것이지요.

성막을 섬기는 레위인들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또한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12지파가 각각 3지파씩 포진해서 진행합니다. 이때 앞에서 인도하는 지파는 유다 지파로서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입니다(창 29:35).

시편 68편 4절에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이 길을 여시며 그들을 이끌어가시는 모습입니다. 찬양은 광야에 길을 열어줍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지요. 또 유다 지파가 앞에서 광야의 여정을 이끌듯이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