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자유가 어떤 느낌인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것은 빛이라는 것이다. 앨라배마에 있는 내 친구 헤더의 집에는 그 빛이 가득하다.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나치게 뚱뚱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색전구가 반짝거렸고, 흐릿한 겨울 햇살이 춤을 추듯 식탁 위를 비춰주었다. 전구와 나무와 햇빛이 이미 그곳에 있던 것에 더해져서, 그 밝은 빛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가 예수님을 향해 밀어냈다.
헤더는 아마도 그날 처음으로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오랜 세월 동안 성인의 삶을 제어하기 위한 그 밀고 당김이 그녀를 공허하게 했고 하나님과 어긋나게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밤과 낮처럼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제는 빛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 속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현실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게 되길 너무나도 간절히 원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자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겠니?”
헤더는 의자에 편안히 파묻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내가 정말 어려운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난 못해. 그걸 설명할 수가 없어.”
“해봐.”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못하겠어.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만약 네가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네가 여전히 어떤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한 번 경험하면 알 거야. 그건 네가 지금까지 느낀 그 어떤 것보다 더 실제적이야. 정말 근본적으로 다른 느낌이라서,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그것과 같아 보이지 않아.”
그 어떤 것도 그것과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행복, 상처, 힘든 날들도. 당신의 집이나 가족, 차, 또는 직장도.
헤더가 말했다.
“단순한 자유, 진정한 자유는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는 거야. 나는 내 삶을 주관하지 않아. 그건 좋은 일이야. 좋든 나쁘든, 그건 내 손 안에 있지 않아. 내가 공로를 인정받지도 않고. 그건 이제 내 삶이 아니야. 하나님의 것이지. 그것은 압박감을 덜어줘.”
내 삶을 주님께 맡길 때,
나를 주님께 드릴 때 오는 자유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믿기 때문에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을 믿는다. 당신을 향한, 그리고 나를 향한.
“이제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 삶을 사용하시고, 내게 필요한 것을 알게 해주실 거라 믿어. 내 마음이 좀 더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하는 법을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실 거라 믿어.
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은 그 자신으로 나를 충만케 해주셔서 더 이상 내가 아닌 상태가 되는 거야.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것으로 나를 채워주실 여지가 생긴 것이지. 그리고 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내 이야기를 망치고 있지 않다고 믿어. 그건 사실 하나님이 쓰기 원하시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거라고. 그건 가장 큰 기쁨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조각들을 모두 갖고 계실 때 기쁨이 당신의 마음에 가득해진다. 당신을 억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여전히 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훨씬 더 가벼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또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건가?’ 또는 ‘대체 어떻게 이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무거운 고민을 할 필요 없이, 아파하고 슬퍼한다.
‘왜’라는 질문은 기차 뒤로 떨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의 마음과 더 큰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이루고 계신가 하는 질문의 바람 속에 사라진다.
우리는 여전히 씨름하는가? 당연히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은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은 우리의 영혼과 끊임없이 싸우는 죄악의 쇠창살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더욱더 깨닫게 된다.
그것이 우리 질그릇의 갈라진 틈으로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는 이유, 또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이 온전해지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과 구원의 보물을 우리의 질그릇 속에, 육신의 장막 안에 두어야 하며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라고 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른 것은 우리가 항복하도록 자극을 주지 못하며, 우리에 비해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강하며 믿을 만한 분이신가를 깨닫는 것만큼 자유를 주는 것은 없다.
“뭘 알아내려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그게 좋아. 하나님이 나보다 그 일을 훨씬 더 잘하시니까.”
헤더가 말했다.
“어떤 일을 어떻게 끝낼까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내 일이 아니야. 나한텐 계획이 필요치 않아. 나에겐 확실한 삶이 필요치 않아. 하나님으로 충분하니까. 또 하나님은 내 힘으로 알아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분이셔. 내가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어 주시지.”
모든 것. 우리에게는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우리의 마음은 환해진다. 우리의 눈에, 우리의 빈손에 빛을 갖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실 때 우리의 삶은 본래 창조된 목적대로 정돈된다. 그것은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를 바라보고 주변 모든 것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무거운 가방들을 기차에서 던져버리듯이 다른 것은 모두 손에서 놓아버린다. 그 대신 우리의 손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한한 유익이다. 그것은 실제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 말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장 27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로마서 8장 5, 6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베드로전서 5장 7절
† 기도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강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걸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앞에 당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분 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고 결단하며 나아갑시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