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을 알라
하나님을 알자

8장 무한히 거룩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 15:4).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무한히 거룩하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종종 “거룩하신 자”로 부른다. 그 이유는 모든 도덕적 탁월함이 그분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라고 말했다. 거룩함은 신적 본성의 정화(精華)이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거룩함에 영광스러우시다”(출 15:11). 하박국 선지자는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합 1:13)라고 말했다. 피조물은 선천적으로 무기력하지만 하나님의 권능은 무한하다. 인간은 어리석고 이해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도덕적으로 흠이 있고 불결하기 짝이 없지만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게 하셨다(대하 20:21 참조). “권능은 하나님의 손 또는 팔을, 전지하심은 그분의 눈을, 자비는 그분의 가슴을, 영원은 그분의 무한함을 드러내는 데 비해 거룩함은 그분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스테판 차녹).
다시 말해 거룩함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들의 눈에 하나님의 지고(至高)한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는 속성에 해당한다.

모든 속성에 영광을 부여하는 속성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에 대해 스테판 차녹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종종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불린다.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은 다른 어떤 속성보다 그분의 위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른 속성들보다 이 속성이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주로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위엄을 암시하는 이름’이나 ‘하나님의 지혜를 암시하는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암시하는 이름, 특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암시하는 이름’이 흔히 성경에 등장한다.

이는 가장 위대한 영예(榮譽)의 호칭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암시하는 이름 안에 그분의 위엄과 덕망을 칭송하는 이름이 모두 포함된다.”

하늘 보좌 앞에서도 다른 속성들이 아니라 바로 이 속성과 관련된 찬양이 울려 퍼진다.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사 6:3)라고 찬양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하심을 들어 맹세하신다. 그 이유는 거룩함이 다른 무엇보다 그분 자신을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편 기자는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 30:4)라고 권고했다. “거룩함은 초월적인 속성, 즉 나머지 속성을 모두 관통하며 그 모두를 빛나게 하는 속성이다”(존 하우). 따라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시 27:4)은 “거룩함의 아름다움”(시 110:3, 개역한글성경은 ‘거룩한 옷’으로 번역했다 - 역자 주)을 의미한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보다 더 뛰어난 듯하다. 다시 말해 거룩함은 나머지 모든 속성의 영광이다. 이 속성은 신성(神性)의 영광이자 신성에 포함되는 모든 속성들의 영광인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다른 모든 속성의 힘이듯이 그분의 거룩함은 다른 모든 속성의 아름다움이다.

전능한 속성이 다른 속성들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 힘을 발휘할 수 없듯이 거룩한 속성이 다른 속성들을 빛나게 하지 않으면 모두 볼품없이 변하고 말 것이다. 이는 태양이 빛을 잃으면 그에 따라 열도, 힘도, 생명을 살리는 능력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이치와 같다. 진실함이 성도의 다른 영적 은혜를 빛나게 하듯이 순결함이 하나님의 다른 모든 속성을 빛나게 한다.

곧 하나님의 공의는 거룩한 공의이고, 그분의 지혜는 거룩한 지혜이며, 그분의 권능은 ‘거룩한 팔’(시 98:1)이다. 또한 그분의 약속(또는 진리)은 ‘거룩한 말씀’(시 105:42)이고 하나님의 이름, 곧 그분의 속성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이름은 거룩한 이름이다”(스테판 차녹).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 145:17)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 지극히 탁월하다. 거룩함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사역의 규범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심히 좋았다”(창 1:31)라고 말씀하셨다. 피조물들 가운데 조금이라도 불완전하거나 거룩하지 못한 것이 존재했다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전 7:29) 지으셨다.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또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유 6절)라는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타락한 천사들도 처음에는 거룩한 존재로 창조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성경은 사탄에 대해서도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라고 말씀한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분의 율법을 통해 나타난다. 율법은 가장 공공연한 죄는 물론 교묘하게 위장된 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죄를 금한다. 다시 말해 율법은 육체의 부패한 행위는 물론 마음의 의도, 곧 겉으로 드러난 행위는 물론 은밀한 욕망까지 모두 단죄한다.

바울 사도는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했고, 시편 기자도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시 19:8,9)라고 증언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가장 엄숙하고도 경이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거룩하심과 죄를 가증하게 여기시는 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셨으면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시켜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철저히 징계하셨겠는가?

“악한 세상에 지금까지 쏟아진 심판의 대접이나 앞으로 쏟아질 심판의 대접도, 죄인의 양심을 괴롭히는 풀무 불과 같은 뜨거운 불길도, 반역을 도모한 귀신들에게 선고된 취소할 수 없는 판결도, 저주받은 인간들의 신음 소리도 그리스도께 쏟아진 하나님의 진노만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못한다. 또한 죽음의 고통을 맛보며 신음을 토해내는 구세주의 일그러진 얼굴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없다.

시편 22편은 그러한 주님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은 얼굴을 돌려 그리스도를 외면하시고 날카로운 칼을 그리스도의 심장에 쑤셔 넣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으셨다. 그리고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라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셨다”(스테판 차녹).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모든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율법에 순응하는 것은 모두 사랑하시고, 율법을 거역하는 것은 모두 미워하신다. 성경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는다”(잠 3:32),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다”(잠 15:26)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처벌하신다. 죄가 심판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종종 죄인들을 용서하시지만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신다. 죄인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형벌을 감당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말씀하는 이유이다.

나훔 선지자는 “여호와는 …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신다”(나 1:2)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죄로 인류의 첫 조상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셨다. 함의 자손도 단 한 번의 죄 때문에 오늘날까지 저주 아래 살고 있고, 모세도 단 한 번의 죄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밖에도 엘리사의 종은 문둥병에 걸렸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저 세상으로 가야 했다.

이런 사실에서 성경 영감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또 한 번 나타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단편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가 다른 모든 속성을 압도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들려주실 말씀은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시 50:21)라는 말씀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악한 마음에 부합하는 ‘신’(神)만을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어리석은 삶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를 계속한다.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에서 비롯하는 거룩함은 인간의 차원을 초월한다. 고대인들과 현대의 이교도가 섬기는 ‘신들’의 속성은 하나님의 완전한 순결과는 정반대이다.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은 모든 죄를 가증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곧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절대로 생각해내지 못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변함이 없이 무한하다. 그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것보다 인간의 완전한 부패와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를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세상이 ‘범죄’로 부르는 것에만 국한된다. 인간은 범죄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그 밖의 잘못에 대해서는 ‘결함’, ‘실수’, ‘무기력’과 같은 완곡한 용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죄가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도 변명이나 정상참작과 같은 수단이 종종 동원된다.

신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사랑하는 ‘신’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젊음의 ‘무분별함’을 관대히 용납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씨 좋은 노인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성경은 “주(主)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 5:5), “하나님은 …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라고 말씀한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죄를 증오하신다는 사실이 생각날 때마다 부득부득 이를 간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생각해낼 수도 없고, 또 뜨거운 불못에서 영원히 형벌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공로를 세우더라도 그분께 인정받을 수 없다. 타락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창조하겠다고 나서는 편이 더 낫다. 어떻게 어둠과 빛이 한데 어울릴 수 있겠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더러운 옷”(사 64:6)을 기뻐하시겠는가?

부패한 인간의 행위는 제아무리 선해도 불결할 뿐이다.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이 거룩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것을 인정하신다면 그것은 곧 그분 자신과 스스로의 완전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나 같다. 작은 얼룩만 하나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거룩하신 속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는 죄인은 모두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엡 1:6)를 받을 수 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본받으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나아갈 때는 경외심과 숭앙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시 89:7).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시 99:5).

그렇다. 우리는 ‘그 발등상 앞에서’ 지극히 낮은 자세로 겸손히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나님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경외함으로”(시 2:11) 섬겨야 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레 10:3)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통해 마음에서 경외심이 더욱 크게 일어날수록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마땅히 그분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만큼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명령은 없지만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명령은 있다. 성경은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열띤 찬양이나 웅장한 표현이나 거창한 섬김보다는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처럼 거룩하게 살기를 열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훨씬 더 영화롭게 할 수 있다”(스테판 차녹).

하나님은 거룩함의 원천이자 근원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성품을 지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라는 기도를 우리의 매일 기도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