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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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주어진 환경 살펴보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거나 결정에 대한 확증을 얻고자 할 때, 우리의 환경을 사용하여 지침을 주기도 하신다. 나는 어떤 일을 결정하고 돌아보면서 그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내 상황을 통하여 그 뜻을 전해주셨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환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친구의 요청으로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을 위해 정기간행물 발행하는 일을 막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인 래리 버킷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을 위해 글도 쓰고, 또 그들을 훈련하면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나의 동료이다. 그 무렵,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일터사역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래리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그런 새로운 단체들을 잘 알고 있나?”
“아니, 잘 몰라. 하지만 그 모든 단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관여하고 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면, 서로 중복을 피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사역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혹시 자네가 그런 단체들의 지도자 몇 사람을 초청하여 연석회의 같은 것을 개최해보면 어떨까?”

나는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일단 전에 함께 일했던 주요 일터사역 단체의 지도자들과 접촉해보기 위해 초대장을 보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전국 각지 일터사역 단체들의 지도자들이 그런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신들도 참석하게 해달라는 요청서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침내 회의가 개최되던 날, 미국 전역의 45개 일터사역 단체들을 대표하는 54명의 지도자들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임은 현재 내가 전력을 다해 매진하고 있는 ‘경제계리더협회’(Marketplace Leaders Foundations)의 시초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당시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절묘한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편성하여 지휘하는 것처럼 내 주변 환경을 절묘하게 편성하여 지휘하셨고, 환경을 통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증해주셨기 때문이다.

영혼을 짓누르는 압박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도 자백하지 않을 때, 그 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한다.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자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 하나님은 환경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죄를 자각하게 해주신다. 죄는 중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지 못하게 막는다.

최근 나는 정말 산 정상에 올라간 것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알 수 없는 무거운 구름이 나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 구름을 헤치고 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 의심만 더욱 깊어졌다.

당시 나는 불확실한 미래로 안달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그간 해오던 광고대행업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랜 시간 혼란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었다. 그 문제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 압박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다. 그 압박감과의 싸움이야말로 영적 전쟁 그 자체였다.

기네스북에 나올 만한 기묘한 일

그러던 어느 날 밤, 하나님의 소명에 관한 오스 기니스(Os Guiness, 기독교 변증가)의 책을 읽고 있었다(사실 나는 ‘기니스’라는 그의 이름을 대했을 때, ‘기네스북’에 나올 만한 기묘한 일이 내게 일어나리라는 것을 짐작했어야 했다). 그는 그 책의 한 대목에서 우리가 매우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다른 사람들을 시기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순간 내가 사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소명으로 내 삶에 힘들고 어려운 역경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회개해야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성령께서는 마치 그런 식으로 나의 잘못을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듯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확증해주셨다. 그날 아침, 나의 메일함에 도착한 ‘매일묵상’(당시 나는 ‘매일묵상’을 작성하여 전 세계 많은 그리스도인 직장인들에게 메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메일은 나에게도 발송되도록 하였다)을 읽으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그날 묵상의 주제가 ‘다른 사람을 시샘하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오스 기니스가 그의 책에서 인용한 그 성경 구절을 본 날과 그 성경 구절을 인용한 매일묵상을 받아본 날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우연이었을까? 하나님께서 내가 했던 말을 사용해서 나의 죄를 깨우쳐주신 것은 아닐까? 그날 오후, 마침 지역 라디오 방송에 오스 기니스가 나온다기에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라디오를 켜는 바로 그 순간, 전날 밤에 그의 책에서 읽었던 그 대목을 그가 인용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성령께서 그렇게 정확하고 정밀하고 꼼꼼하게 나의 죄를 일깨워주는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과 또 내 안에서 활동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비뽑기로도 우리의 결정을 도우신다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출애굽기 28:30

구약시대에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릴 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지녀야 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성막에 들어가는 것에 관하여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주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각각을 나타내는 보석이 달린 흉패를 가슴에 부착해야 했다. 그 흉패는 정사각형의 천 조각으로, 주머니 모양을 만들기 위해 위쪽으로 절반이 접혀 있었고, 그 주머니 안에는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우림과 둠밈이 정확히 무엇이고, 그것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또 제사장들이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였는지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그것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사용하였다는 사실뿐이다.

그것들은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할 때, 그들의 결정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기물(器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이것이 나오면 이렇게 결정하고, 저것이 나오면 저렇게 결정하는 방식’으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동전 던지기, 혹은 제비뽑기와 매우 유사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한 중대한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다. 최종적인 결정은 오직 하나님께서 내리셔야 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제사장들 손에 두지 않고, 하나님 손에 두기 위해 사용하신 수단이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잘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청지기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최종 결정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에 최종 결정을 내릴 권한을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두신다.

하나님께 양도하는 자발성

나는 분명히 예상하고 있다. ‘제비뽑기’방식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도록 도울 수 있는 수단으로 제시되는 이 대목에서 몇몇 독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전반에서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우연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동전 던지기나 제비뽑기 같은 방법으로 쉽게 결정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가 도무지 영적이지 못한 그런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일까? 정말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제비뽑기 방식의 핵심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하나님께 기꺼이 양도하고자 하는 자발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이에 관한 성경 말씀이 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33

대체로 성경에서 제비뽑기와 같은 방식이 사용되는 것은 두 사람이나 양쪽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그 분쟁을 해결하기 원할 때이다.

이를테면 양쪽 모두 하나님의 명백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의견이 달라 다투게 될 때, 자신들의 의견을 포기하고 제비뽑기로 그 결과를 결정하는 일에 동의하는 것이다.

제비뽑기의 긍정적인 의미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통제권을 인간의 손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수단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하나님의 지침을 얻거나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일상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한 경우는 예외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제비뽑기의 유익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한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들은 두 사람을 선발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을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오랜 기간 금식 기도도 하지 않았고, 투표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로부터 최종적으로 한 사람을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다.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사도행전 1:23-26

그들은 최종적인 결정을 위해 제비를 뽑는, 예부터 내려오던 히브리 원칙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누가복음에서는 세례 요한의 출생에 대해 전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누가복음 1:8-10

이러한 제비뽑기 원칙의 실제적인 효용은 무엇이었을까? 초대 교회에서 제비뽑기는 어떤 문제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다툼과 논쟁을 피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잠언 18:18

충분히 타당하고 선한 방법

혹시 배우자나 다른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혹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을 때, 동전 던지기 방식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자기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제안해보기 바란다. 물론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택할 만한 영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자들도 사용했던 충분히 타당하고 선한 방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기에 문제가 될 특별한 이유는 없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결정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이 제비뽑기라는 이 방법에 우선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경에 바탕을 둔 이 원칙이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방법은 우리가 인생의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게 해준다. 중요한 사실은, 이 방법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문제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는 사람인지를 구별해준다는 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해 첫 번째로 취해야 할 행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또 성령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도록 성령의 역사하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