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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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권위자 인정하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3:17

인간의 첫 번째 죄는 에덴에서의 불순종이었다. 그 때 하와는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아담과 함께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하와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아담 또한 사탄에게 기만당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따먹자는 하와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것은 인간이 첫 번째로 내린 나쁜 결정이었고, 그 결정은 오늘날까지 인류에게 비극적인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살지 못한다는 것

그런데 그들이 저지른 죄의 실제적인 내용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기 위해 에덴에 기본적인 규칙 한 가지를 정하셨다. 그것은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계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의 실제적인 내용은, 그들이 하나님 권세가 아닌 다른 것을 원하여 하나님 권세에 반기를 들고 불순종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하나님 권세가 아닌 다른 것을 찾으라고 충동질한 것은 사탄이었다. 사탄은 너무나 그럴듯한 제안을 하였고, 하와는 이를 뿌리치지 못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도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살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를 집요하게 유혹한다.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이는 상황, 지식과 기쁨을 증대시켜줄 것처럼 보이는 상황, 우리를 신(神)처럼 만들어줄 것 같은 상황으로 마치 멋진 선물 보따리인 것처럼 위장하여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한 사탄의 술책에 속아 넘어갈 경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하신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해로운 결과들을 낳는 인생의 우회로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권위자를 세워주신 까닭

나는 광고회사 경영자로 있으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결정 가운데는 정말 후회되는 것들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세우신 권위자들에게 내 행동과 결정들을 타당하게 해명하고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한 결정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복종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리스도인 직장인들과 사업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부분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에 제시된 몇 가지 지침을 깨닫고 따르기만 해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어길 때, 마음의 거짓된 속임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그릇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권위자’라는 단어가, 좋든 싫든 반드시 굴복해야 하는 어떤 사람을 의미한다고 늘 생각했다.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었고, 그 단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나는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하나님께서 내게 세우신 권위자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혼자 살아갔다. 솔직히 전에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한 친구의 도움으로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내 인생의 주된 결함의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살 때,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 나는 많은 것들을 혼자 결정하면서 성장했다.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어느 지역에 거주할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등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의견을 구하지 않고 혼자 결정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 13:1

물론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하지만 나의 행동과 결정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게(하나님께서 내 위에 세우신 권위 있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해명하고 보고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권위자를 통한 보호하심

광고회사를 경영하면서 나는 정말 형편없는 결정도 많이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권위 있는 사람들을 세워주셨음에도, 그들을 내 삶에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행동과 결정에 대해 그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명하고 해명해야 할 책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런 결정들이 그릇된 결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결정들이 가져온 결과는 내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릇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권위자를 세워주셨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를 통치하신다. 우리에게 권위자는 하나님 뜻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그릇된 결정에서 비롯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기관 중 하나이다.

‘보호’라는 단어는 우리가 ‘권위자’라는 단어를 대할 때, 처음으로 떠올려야 하는 핵심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권위자를 세우셔서 우리를 통치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중요한 영역에 세운 권위자들

우리 모두는 온전하게 될 필요가 있는 성품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성품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우리 위에 세우신 권위자를 사용하신다.

우리는 가정, 교회, 일터, 정부, 개인적인 인간관계 등 인생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그러한 권위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세 가지 주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권위 구조’ 안에서 계획을 세우신다.

1. 우리가 지혜롭고 덕스럽게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2. 우리가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받도록
3. 우리가 결정할 때 하나님의 명백한 지침과 확증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권위 구조를 세우시는 까닭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로마서 13:1-3

위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위에 있는 ‘권위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권위 있는 사람들은 우리의 가정과 일터, 교회와 개인적인 인간관계 안의 권위자는 물론이거니와 정부 당국자들까지도 포함된다.

로마서의 이 말씀은 권위자들에게 동조하거나 그들과 잘 사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그들을 권위자로 존중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

명하신 그대로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를 우리가 높이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를 때, 로마서 말씀 그대로 결국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

가정에 세운 권위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에베소서 5:21-25

성경이 말하는 가정의 역할과 권위에 관한 한, 오늘날 우리 가정은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 오늘날 가정은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이 깨져 있고, 어질러진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라는 성경 말씀이 여성의 예속과 남녀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기만당해왔다. 남자들은 이러한 성경의 개념을 악용하여 여자들을 조종하고 억압해왔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 아니다.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단지 책임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라고 가르친다(엡 5:23 참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지혜롭다거나, 더 유능하다거나, 가정의 머리가 될 만한 자격을 더 많이 갖췄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다. 가정을 설계하셨을 때, 그런 식으로 질서를 정하셨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누가 궁극적으로 사랑과 희생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를 강조하시지, 누가 가정의 대장이냐를 강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가정의 머리로서 가족들의 영적, 신체적 상태를 위한 사랑과 희생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성경이 말하는 남편의 권위를 단지 아내와 자녀에 대한 지배로 간주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가정에서 평화를 맛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결정하고, 서로 상대방의 지혜를 의지하며, 마음을 터놓고 사랑으로 교류하면서 기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가정에서의 또 다른 권위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세우신 또 다른 권위자는 바로 ‘부모’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부모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중요한 권위자이다. 물론 결혼했다면,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하나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공경할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관련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12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단명(短命)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았으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들을 죽음의 형벌로 엄히 다스렸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5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7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언 20:20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실 뿐 아니라 그것을 매우 중요한 일로 여기신다. 성경은 언제나 부모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잠언 23:22

하나님의 법 vs 인간의 법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모의 ‘모든’ 말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위를 존중하길 바라신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인 사람들 역시 많은 결점이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럼에도 그런 부모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우리가 부모를 통하여 특정한 성품의 특질을 발전시키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가 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일지라도 부모로서 갖는 지위는 여전히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이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언젠가 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네가 하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빠에게 있니?”
“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나는 딸아이가 그 일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요구가 부모로서 합당한 요구였다는 것을 딸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딸은 그것을 하겠다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쭈뼛거리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왜 우니?”
“내 감정이, 아빠가 요구한 일을 할 수 없겠다고 해요.”

그 때, 아이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아빠가 요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아빠에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나는 그런 딸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딸에게 요구했던 그 일은, 아이에게 꼭 필요했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가족이 그리스도인 가정으로서, 기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과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됐든 아빠로서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설명했다. 또한 나는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말하면서, 만일 아빠가 성경에 어긋나는 것을 하라고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나 국가 법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하나님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항상 높기 때문이다.

자녀를 위해 보호의 울타리를 쳐라!

요즈음 가정에서는 어린 자녀들이 가정의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다. 자녀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것과 그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가정은 물론이고 교회에서조차 모든 어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엄한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상이다.

그러나 가정을 성경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면, 자녀들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기가 쉽지 않다. 만일 우리 자녀들이 울타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의 보호 아래서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하고 사탄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우리는 부모로서 가정을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려야 하며, 자녀들이 경계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튼튼한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들은 이 울타리 개념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이런 개념 상실이 몰고 온 재난은, 십대들의 임신율 급증과 학교 폭력 증대와 학업 수준 하락 등으로 여실히 목격되고 있다.

일터에 세운 권위자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에베소서 6:5-8

과거 광고회사를 경영하던 시절, 사내에서 발생한 명령불복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 문제들의 거의 대부분은 직원 개개인과 관련된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직원 중 회사 정책을 따르려고 하지 않은 직원이 있어 불가피하게 해고해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리스도인 경영자로서, 성경의 원칙들을 회사 경영에 적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사업체에는 서로 다른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다양한 권위 구조와 책임 구조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그 회사 내부에서 모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소유한다. 영리법인 회사이든 비영리법인 회사이든, 그들은 회사를 대표하여 취하는 모든 조처에 재정적인 책임을 진다.

그리고 그러한 이사회의 통솔을 받는 모든 직원들은 그들의 권위에 예속된다. 이사회는 회사를 위한 모든 결정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이 한 회사의 직원이라면, 그 회사의 경영 정책이나 방침이 성경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충실히 따라야 한다(골 3:22-24 ; 벧전 2:18 ; 딤전 6:1,2 참조).

하나님 관점에서의 유능한 경영자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개인회사를 경영하고 있거나 그리스도인 최고경영자가 운영하는 개인회사의 자문위원으로 일하는 경우, 다음을 잘 읽어보기 바란다.

개인회사의 자문회의는 주식회사의 이사회와 많이 다르다. 자문위원의 역할은 최고경영자(CEO)를 위해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최고경영자에게 이런저런 제안과 대안과 선택사항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회사에서는 모든 최종적인 결정을 최고경영자(CEO)가 내린다. 그리고 회사를 위한 모든 최종적인 결정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 또한 최고경영자가 진다. 어떤 결정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재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자문위원들이 아니라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가 자문위원들의 제안을 따라 어떤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는데 그 결정이 회사의 파산을 가져 왔을 경우, 자문위원들은 채무이행의 책임이 없지만 최고경영자에게는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 경영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자문회의는 최고경영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충고하고 권고하고 격려하고 기도해야 하며, 최고경영자가 독단적으로 그릇된 결정을 하지 않게끔 시야를 터주고 견제해야 하며, 최고경영자를 보호해야 한다.

자문위원은 최고경영자가 내린 결정이 적절해 보이지 않을 경우에 직원들이 호소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최고경영자는 자문회의의 조언을 경청해야 하며, 충분히 기도해야 하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문회의의 권고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최고경영자의 몫이다. 왜냐하면 결국 금전적 책임을 져야 하는 장본인은 자문위원들이 아니라 최고경영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최고경영자로서 유능한 경영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자신을 회사의 유일한 결정권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위해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과연 자신의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사사로운 이익이나 자기 마음의 속임수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세상의 권력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권력자들을 많이 사용하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다스리시며, 그 생각을 이끄신다고 말한다(잠 21:1 참조). 하나님의 일을 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사용하시며,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성경에는 당대의 권력자들을 마땅히 존중함으로써 오히려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를 대할 때 그를 존중했고, 요셉은 보디발을 대할 때 그러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을, 예수님이 빌라도를 대할 때 그렇게 하셨다.
베드로는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롬 13:1-7 참조)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벧전 2:13,14)라고 권고했다.

세상의 권력자이든 우리의 가정, 일터, 교회에 있는 권력자이든 모든 권위 구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권위 구조 아래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느낀다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 역시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 권위 구조에 반항하고 반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 아래서 살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대통령을 한 사람의 인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나타내는 지위는 존중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대통령을 우리의 권위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권력자들이 성경의 명령을 어기라고 우리를 강압하지 않는 한, 그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자로 인정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정부 당국자나 세상 권력자들이 우리의 신앙적 소신을 굽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때, 그들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

요즈음은 낙태 문제나 여러 도덕적 문제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곤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문제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 지 살펴보고 그 문제들에 대한 입장표명을 해야 하며, 양심이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교회에 세운 권위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2,13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권위자를 세우는 네 번째 영역은 ‘교회’이다(히 13:7 ; 딤전 5:17 ; 벧전 5:1-3 참조).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목회자와 장로 같은 직분자들을 세워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고, 하나님의 지침을 공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의 지휘와 통솔에 굴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하신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길을 따라 올바르게 이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권위 구조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장로들에게 권위 구조가 되고, 장로는 목회자에게 권위 구조가 되어 지역교회의 모든 결정에 있어서 서로에게 타당한 해명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와 장로 같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런 책임을 엄숙하게 맡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지역교회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도 있다. 목회자와 장로들의 지휘와 통솔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교회 지도자들이 평신도 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목회자와 장로들이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선한 목자로서 교인들을 인도하고, 교인들은 순한 양처럼 그들을 따르는 것을 뜻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런 역할을 수행해준 우리 교회 목사님과 다른 조언자들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었다. 그 유익의 크기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시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주셨고, 앞으로도 그들을 사용하셔서 내게 하늘의 빛을 비춰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일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일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수행할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면, 선한 목자로서 주인의 양 떼를 올바르게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만한 태도로 양 떼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중요한 이유를 들어 그 교회에 남아 있으라고 특별히 명하신 경우가 아니라면,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다른 교회를 알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께서는 기능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그 교회에 우리가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