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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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결정의 주도권 맡겨드리기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사야서 5:21

우리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수평적으로 결정하는 법과 문제들에 수평적으로 반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다. 이는 곧,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뜻한다.

내 인생의 주도권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은 아무데나 옷을 벗어 던지는 아내나 남편, 지나치게 비판적인 직장상사, 금전적인 문제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가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 해결의 책임을 떠맡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옆으로 물러나 우리가 실패를 체험할 때까지, 그래서 마침내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찾기로 결단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성경에서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의 현격한 대조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 중 하나가 사울 왕과 다윗의 이야기일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뒤에 하나님의 사랑과 백성들의 신임을 독차지하자 사울 왕은 다윗 죽이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살았다(삼상 18:29 참조).

다윗은 사울에게 추격을 당하던 중 사울을 죽일 기회를 몇 번 얻었지만, 사울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때와 그 방식을 인내로 기다렸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 사울을 존중하였으므로 자신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사울은 이러한 원칙에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다윗을 문젯거리로 인식하였고, 무력으로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기로 결단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들을 결정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왕위를 박탈당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도 또 다른 좋은 예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들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들 부부에게 아기는 생기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약속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들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창 16장 참조).

물론 그들 부부는 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낳았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 같은 불순종으로 오늘날 아랍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이 대립하게 됐고, 그 충돌과 갈등의 양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에 대한 두려움

나는 매우 모험적인 사업을 시작했다가 완전히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을 시작했을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업이라는 증거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조급했고, 하나님의 지침을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급한 생각과 추측으로 행동했다.

그 일로 내가 감수해야 했던 재정적 손실은, 하나님께서 “가라”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수직적 의존에 기초해 결정하지 않고, 인간의 수평적 선택에 기초해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지금도 내게 분명히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인생의 모든 세세한 부분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의 속임수에 희생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행동을 개시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행동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추론에 기초해 결정한다.

우리가 빠져드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듣게 될까 봐 하나님께 물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즉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쥘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맡길 것인가?”로 귀결된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회개 없이 성령의 깨달음도 없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한 불변의 법칙이 있다. 이러한 법칙들을 어길 때, 우리는 형편없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한 결정의 결과로 고통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칙들은 중력의 법칙이 우주의 모든 물체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결정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그릇된 동기로 어떤 결정을 하거나 잘못 전해들은 사실을 기초로 결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결정을 결코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도 자백하지 않았다면,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의 상황에 대한 깨달음도 얻을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14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결정을 하려면 우리의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걸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한 번은 친구가 기도응답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나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나를 아셔. 하지만 자네처럼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어!”

나는 그 친구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던 중, 그 친구가 과거 상처로 하나님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가 인생의 교차로에서 번번이 실망스럽고 형편없는 선택을 했던 이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러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자기의존에 빠져 있는 인생을 축복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이 죄와 자기의존의 길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벽을 쌓으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