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 결정에는 단순한 것들도 있지만,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만큼 중요한 것들도 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괴로운 삶을 살아가느냐, 평온한 삶을 살아가느냐가 정해진다.
어떤 결정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또 어떤 결정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최선이 되는 결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관한 기쁜 소식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많은 지침과 교훈들을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결정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잘 모른다면, 우리가 ‘선한 결정’(good decisions)이라고 생각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결정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추정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린 예가 많이 나온다. 추정(推定)이란 우리가 합당한 경계선을 넘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억측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잘 모를 때,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진리와 원칙을 잘못 해석하고 타당한 범위 이상에 적용하게 된다. 결국 성경의 진리와 원칙을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에 ‘잘못’ 적용함으로써 실족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한 우리 노력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하나님과 수직적인 초점을 맞추고 유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수직적으로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참으로 온전히 거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우리가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 하나님 뜻대로 결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침이 담긴 성경 말씀에 따라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 말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이 자신들의 인간적인 논리와 추론에 기초하여 삶의 문제들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수직적 차원의 관계를 갖는다는 말은 우리 자신의 힘이나 조종(操縱)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과 같은 수평(水平)과 수직(垂直)의 구도는 이러한 원칙을 효율적으로 예증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추론에 근거해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정하는 것(수평적 구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것(수직적 구도)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수직적인 초점을 맞추기 위해 힘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주신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해 하나님께 지침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지침을 주신다는 것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침들이 하나님께 온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하는가에 관한 문제와 우리에게 주신 지침을 하나님께서는 언제 행하실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찰할 것이다.
세 가지 사례를 예로 들었다. 처음 두 사례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해 하나님께 수직적인 초점을 맞추고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사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결정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술했다.
1. 모든 일에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조지 뮬러
조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 고아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조달받은 것으로 유명함)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놀라운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의 삶은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읽고 듣는 모든 이들에게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는 고아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었을 뿐, 그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것과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능히 공급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기 원했다.
그는 영국의 브리스톨 지방에서 ‘성경지식협회’를 창설하여 사역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그 어려운 시대에 4개 동(棟)의 고아원을 건축하여 2천 명에 달하는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가 93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고아원 아이들은 1만 명이 넘었고, 그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여 고아들을 위해 쓴 돈의 총액이 8백만 달러가 넘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했던 것일까?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이자 영적 교사인 헨리 블랙가비(Henry Blackaby)는 자신의 유명한 성경공부 책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Experiencing God)에서 조지 뮬러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어떻게 하나님과 수직적 차원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생의 문제들을 결정하였는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성령의 가르침으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신실하고 끈질기게 참으면서 ‘오랜 시간’ 애썼던 적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오랜 시간 애쓰지 않아도 언제나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함을 받았다.
그러나 만일 나에게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 앞에서의 올곧음이 부족했다면, 혹은 내가 하나님의 지침을 앙망하지 않고 경솔하게 나의 생각과 느낌으로 결정했다면, 혹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언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조언하는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나는 분명히 아주 큰 실수를 범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과 마음 대 마음으로 교제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내 마음이 그 문제에 아무런 뜻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당하는 10가지 괴로움 중 9가지가 바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기를 원하고 기꺼이 그 뜻대로 행하고자 하면, 우리가 당하는 10가지 괴로움 가운데 9가지는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문제가 닥치면 그 문제에 나의 마음이 아무런 뜻도 갖지 못하게 한 뒤에도 느낌이나 단순한 인상에 의지하여 결정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큰 미혹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혹은 하나님 말씀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영(靈)의 뜻을 구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 즉 ‘성령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결합시켜야 한다. 만약 말씀을 배제하고 성령의 가르침만을 구한다면,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에 의지할 때와 마찬가지로 큰 미혹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진정으로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경우라면, 성령님은 성경 말씀에 따라 인도하시지, 말씀에 어긋나게 인도하지 않으신다.
그 다음으로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 섭리 안에 속해 있는 내 주변의 환경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종종 하나님 말씀과 성령과 결부된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나타내준다.
그렇게 나는 환경을 주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계시해달라고 기도한다.
요약하자면, 나는 첫째, 기도를 통해, 둘째, 말씀 묵상을 통해, 셋째, 환경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통해, 나의 능력과 지식을 최대한 발휘하여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한다. 이렇게 판단한 뒤에 나의 마음이 평온하면, 동일한 기도 제목으로 서너 차례 간청한다. 이후에도 마음이 계속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면 그때 비로소 결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2.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다윗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행 13:22 참조). 다윗은 하나님과 수직적인 초점을 항상 유지해야 인생길에서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잡으려고 했다. 그들이 치러 왔을 때, 다윗은 이들을 공격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 하나님께 물었다. 이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사무엘하 5:19
다윗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출정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을 무찔렀다. 그런데 얼마 후,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다윗을 공격해왔다. 이번에도 다윗은 그들을 공격할지 말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약간 다르게 대답하셨다.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사무엘하 5:23,24
만일 다윗이 이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번에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공격을 감행해도 당연히 승리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윗은 분명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가 처음에 썼던 방식으로 일이 순조롭게 처리됐다고,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봐도 좋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윗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의 모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 과거 하나님을 의지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잘 해냈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3.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을 몰아내기 시작했을 때, 한 나그네들이 찾아와 평화조약을 제안하였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는 그들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었던 음식과 물건을 조사했지만, 그들과 화친을 맺는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화친하여 살려주겠다는 조약을 맺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 조약을 지키기로 그들에게 엄숙히 맹세까지 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께 수직적인 초점을 맞추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많은 전투를 치렀다. 사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서른아홉 차례의 전투를 치렀다.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을 하는 동안 치렀던 단 두 차례의 전쟁에 비하면 많은 숫자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그들에게 지침을 주어 원수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게 해주셨다. 그들이 승전을 거듭할수록 그들에 대한 소문이, 새로운 땅을 밟는 그들의 발걸음보다 더 빨리 가나안 주민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주민들이 거하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도 그러했다. 기브온 주민들은 즉각 무슨 수를 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 나라에서 온 사신(使臣)인 것처럼 꾸몄다. 더욱이 해진 옷을 입고, 기운 신을 신고,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와 평화조약을 맺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평화조약을 맺은 것이었다. 성경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거리낌없이 평화조약을 맺었다고 말한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서 9:14,15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주민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고 추정했다. 그것이 잘못된 추정이었음이 불과 사흘 만에 밝혀진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평화조약을 맺은 탓에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에도 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만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기브온 주민들을 종으로 부리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문제를 갖게 된 까닭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동조정장치’(Automatic Pilot)를 가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브온 주민의 책략에 기만당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수직적 초점을 유지하지 못한 데서 온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들은 기브온 주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만약 하나님께 물었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대답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브온 주민들의 올가미에 걸리게 내버려두셨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대가(代價)를 치러야 했다. 그 대가란 바로, 기브온 모든 주민을 종으로 부리는 동시에 그들과의 통혼(通婚)을 피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라신 것이 결코 아니었다. 기브온 주민과의 이러한 관계는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과 타협하고 화해하는 데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우리 삶 속에서 이러한 ‘기브온 책략’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 있다. 그럴싸한 투자의 기회, 더 많은 보수를 보장하는 일자리, 놓치기 아까운 인간관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그런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으면, 혹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한 성경의 온전한 원칙들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기브온 책략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모든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 곧 하나님과 수직적 차원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기브온 책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실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