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에 신령한 은사들이 필요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라는 집단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집단이다.
특히 현대 사회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북아메리카의 사람들은 세부적으로 전문화된 시장들에서 물건을 사고, 동일한 관심사를 매개로 하여 끼리끼리 모인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은 로큰롤을 양념으로라도 틀어주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교회에는 유아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생활보호대상자부터 대기업 임원까지, 학교 중퇴자부터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모두 모이지 않는가?
성별, 인종,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서 교회는 무슨 일을 하는가?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주일 아침마다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한 몸…성도들과 동일한 시민…하나님의 권속”(엡 2:16,19)으로 만드셨는데 과연 지극히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마음 편하게 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런 어려움들을 이미 예상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우셨다.
사도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분은 교회의 다양한 필요들이 교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에 의하여 충족되도록 계획하셨다.
교회는 한 가지 음조로만 말하는 하나의 음성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다양한 색깔을 갖도록 계획하셨다.
◈다양한 영적 은사
교회의 모든 것이 교역자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안수를 받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진리의 일차적 전달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교역자의 사명들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봉사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서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엡 4:12).
그렇다.교회의 많은 일들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 곧 모든 교인들이 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하느냐에 대하여 바울은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하나님의 일은 어떤 한 가지 방법에 의해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교수법을 구사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접근하신다.
그분은 때로는 앞문으로, 때로는 옆문으로, 그리고 때로는 뒷문으로 들어오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영적 은사들을 주신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병자들을 고치는 것, 가르치는 것, 기적을 행하는 것, 예언하는 것, 방언을 말하는 것, 방언을 통역하는 것, 다스리는 것, 지혜의 말을 하는 것, 지식의 말을 하는 것, 영들을 분별하는 것, 궁핍한 자들을 돕는 것, 독신으로 사는 것, 심지어 순교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교회에게 허락하신 은사들이다.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공식적 ‘은사 목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단지 여러 가지 은사의 예들을 제시하는데, 방금 언급한 것들은 그 예들을 모은 것이다(롬 12장 ; 고전 12장 ; 벧전 4장).
하나님이 모든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고전 14:5).
성령님은 다양한 은사들을 사용하셔서 교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들을 들어보자.
하나님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실직 상태에 있는 사람은 돈과 격려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 무엇을 숨기려는 사람은 자신의 정직하지 못함을 깨달을 수 있다.
병든 사람은 치유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그의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는 능력 곧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특정한 진리를 깨달아야 할 사람은 가르침, 예언 및 방언 통역의 은사를 통해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적극적인 신앙생활과 봉사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지도력의 은사를 가진 사람에 의해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연 나의 은사는?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잘 모르는 은사들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다.
그들의 불안감은 성령님이 그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그들을 사용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 특히 심해진다.
그러나 성령님은 불필요하고 성가신 은사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난 후 아무 쓸모없는 물건을 파티장에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집으로 질질 끌고 가는 경우가 때때로 생긴다.
이런 물건은 버리기도 곤란하고 가지고 있자니 딱히 쓸 데도 없다.
성령님의 은사들은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사들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은사를 주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우리의 은사 활용을 통해서 유익을 얻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나에게 은사가 주어지지 않은 것 같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령님은 내게 은사를 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사 활용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라.
그러면 적어도 하나님이 내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어라.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지켜보라.
하나님의 레이더로 교회를 꼼꼼히 살펴보면 많은 은사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반면 교회는 전체적으로 영적 빈곤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주 의미 깊은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을 방문했다.
그들은 울타리 옆에 서 있는 한 노인을 보게 되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이 마을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태어났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노인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아니오.
단지 아기들이 태어났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평범한 질문이었으나, 대답은 매우 심오했다.
누구나 처음부터 위대한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다.
위대한 신앙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재능 있고 은사 활용을 잘하는 그리스도인도 처음에는 시험적 단계를 거쳤다.
그 사람도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큰일을 이룰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봉사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은사 활용을 반복하다보면 더 큰 능력을 얻는 법이다.
하나님의 큰 일꾼들은 성령님의 은사를 적극적으로 환영하여 받아들이고 사용했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 딘 메릴 Dean Merr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