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기쁜 소식’(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가?

‘기쁜 소식’(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가?

기독교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소망을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쁜 소식이다.
이 기쁜 소식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이 신자들로 하여금 불사의 영원한 나라에서 살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원한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격변적 사건에 의해 시작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의 그리스도인 친구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어차피 언젠가 죽을 것이고, 우리가 죽을 때 그분이 우리를 맞아주신다면 굳이 그분의 재림이 필요할까?”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사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주변에는 지구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쩌면 북극과 남극의 만년빙이 녹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기온이 1, 2도만 높아져도 해안 도시들이 물속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기온이 조금만 떨어져도 농토가 황무지로 둔갑할 것이다.
기온이 변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할지라도 인구 폭발 때문에 10∼20년 내에 식량이 바닥날 수도 있다.
아니면 성경에서 말하는 세 가지 재앙, 즉 기근, 지진 및 전쟁이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다.

아니, 이 모든 이야기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각에서 예측하듯이, 핵전쟁이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지구를 황폐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 접할 때 사람들은 이 세상을 더 선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단지 덧없는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나라들과 자연만물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세상이 이런 비관적인 방법으로 종말을 맞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분은 이 세상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아무리 우여곡절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자신의 계획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은 주권자이시다.
그분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될 때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 세상을 보존하실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이 악의 원인이 아니심을 말해준다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이 죽었을 때 종종 이웃 사람들은 남은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에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한다.
태풍이 어떤 도시를 황폐화시켜서 많은 가정들을 망하게 만들었을 때 보험회사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행하심’이라고 부른다.

정말 이들의 표현이 맞을까? 과연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하시는가? 종려 주일(부활절 직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일)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멸망이 닥칠 것임을 예상하면서 우셨다(눅 19:41).
또한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같으시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낼 태풍과 같은 재해의 수를 정해놓고 그것에 따라 날마다 그것들을 보내신다고 상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은 현재의 세상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 없이 이 세상이 현재처럼 영원히 돌아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들의 극한적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곁으로 부르셔서 그들 각자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실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문제들이 죽음을 통해 해결된다 할지라도 악은 계속 존속할 것이다.
이 악을 종식시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바꾸어 말하면, 재림이 없다면 악의 종식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재림을 거부하신다면 그것은 그분이 악을 좋아하시거나 아니면 그것을 종식시킬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성경을 떠난 견해이다.
“악은 하나님의 성품과 영원히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분은 악이 무한히 존속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라는 것이 성경 전체의 메시지이다.
때가 찼다고 그분이 판단하실 때 그분은 악을 영원히 제거하실 것이다.
마귀, 지옥, 그리고 사망이 모두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계 20:10,14).

그리스도의 재림은 마치 ‘가족의 재회’에 비유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의 의미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주의 구조적 변화, 즉 악이 멸망한 가운데 나타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이 '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심을 나타낸다
현재 지구상에는 40억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몇십 억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왔으며, 내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몇십 억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고 내게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지 않은가?
그분은 악을 근절하면서 나까지도 함께 근절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 돌아갔다가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왜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인지를 설명하셨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그분은 말씀하셨다(요 14:1-3).
성경이 그리는 재림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연인들이 다시 만나는 모습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신랑으로, 그분의 교회는 신부로 제시된다.

하나님은 구속 받은 사람들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은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아신 것처럼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예수님이 그분의 약속대로 다시 오실 것임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나는 고통 없는 세상에서 그분과 영원히 살 것임을 믿는다.

만일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면 기독교의 진리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면 나는 역사를 주관하지 않는 하나님, 악을 용납하는 하나님, 악을 막을 능력이 없는 하나님, 자기의 백성에게 관심이 없는 하나님을 섬기는 셈이 된다.

어찌하여 내가 이런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단지 하나님이 내게 풍성한 삶을 주셨다는 이유만으로 그분을 섬긴다면, 그것은 진리의 절반만을 믿는 셈이다.
바울은 한편으로는 감사와 자족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고 말한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어두운 터널 속을 걸어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양초에 불을 붙일 것이다.
또한 옆에서 걷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뻗어 잡아줄 것이다.
이런 노력들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갈 것인가?
기한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소망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터널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생스럽게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는가?
왜 재림이 중요한가?
왜냐하면 역사의 터널 끝에서 영원의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터널은 어둡지만, 그것은 길지 않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의 터널 끝에서 빛이 기다리고 있음을 증명해준 사건이다.
언젠가 그분의 재림의 빛이 터널 끝에 나타나서 터널의 구석구석을 비출 것이고, 악하고 추한 것들을 쫓아낼 것이고, 그분의 자녀들을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여 무한한 기쁨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