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통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고 오셨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부활의 능력 가운데 나를 통하여 그분의 삶을 사시며, 내 몸 안에서 행하시며, 내 마음으로 사랑하시며, 내 머리로 생각하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듯이,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로 가르친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표현을 본래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 원전에서 찾아보면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표현되어 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늘 성령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서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그분이 들으시고, 그분이 들으시면 우리에게 응답해주신다고 가르친다(요일 5:14,15).

우리가 성령 충만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지며, 인침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된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한 번 일어나지만, 성령 충만은 여러 번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가르치는 것이다.

◈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충만케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이 감동을 주실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분은 더 이상 우리를 인도하거나 어떤 지시도 주시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교만하거나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들거나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육신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매사에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의 불을 끄게 된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결혼할 때 남편과 아내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에게 복종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은 아내를 화나게 하는 일을 행한다.
또는 아내는 남편을 모욕하는 일을 행한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관계는 껄끄럽게 변한다.
그들은 여전히 부부이고 여전히 한 집에 살지만, 더 이상 소통하지 않는다.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분이 자기 안에 살고 계신지 아닌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하면 “만일 성령님이 교회에서 떠나신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거하신다.
둘째,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셋째, 죄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슬프게 하거나 그분의 능력의 불을 끈다면 그분의 능력은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성령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의를 갈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적인(신령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님으로 모셔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픈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해 처음에 얼마 동안 기뻐하다가 어느덧 로마서 7장에 묘사된 그런 육신적 그리스도인으로 바뀐 후에는 여생을 ‘어린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감정이 아닌 믿음으로 살다!
성령님에 의해 통제받는 사람과 육신적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엡 5:18-20).

육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억지로 기쁨과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및 절제가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감정에 의존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의인은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
감정은 때로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큰 비극들 중의 하나는 객관적인 것보다는 주관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기보다는 감정에 의지해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신령하다고 느끼지 못할 경우, 자기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의 삶 속에 죄가 있다면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판단에 동의할 때 우리는 몇 가지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성령님을 슬프게 하거나 그분의 감동의 불을 끄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없이 자기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태도, 은근히 교만한 것, 속이는 것도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죄이다.

둘째, 예수님이 내 죄에 대한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하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회개해야 한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나의 행위를 버리고, 그분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님이 나의 삶을 주장하실 때 나의 사고방식, 말, 태도, 욕구 및 행동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