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회심한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회심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후에는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이라는 복잡한 과정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중생의 관문을 통과하여 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성장의 과정은 많은 시간과 훈련과 인내와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장을 외면하고 회심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것은 회심이 일순간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도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전도를 너무 강조하느라고 영적 성장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이 말하는 '성장'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언급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성장하였다고 말한다.
세례 요한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졌다”(눅 1:80).
예수님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가셨다”(눅 2:52).
신약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공적(公的) 사역에 대한 기록들이 나타나기 직전에 제시되는 마지막 묘사는 바로 ‘자랐다(성장했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인 요한과 유일한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성장한 후에 사역을 감당하셨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권할 때 ‘성장에 관한 어휘들’을 종종 사용했다.
그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할 때 우리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엡 4:14,15).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이 성장한다고 칭찬하였다(살후 1:3).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했다.
그들을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비유하면서 또한 그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고 말했다.
성장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에 동참하라고 권하는 몇 가지 비유들에서 기본적 은유로 나타난다.
가장 극적인 성장의 은유는 요한복음의 중간쯤에 나타난다(요 12:24).
여기서 예수님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성장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전체는 성장의 은유가 나타난 구절을 중심으로 해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성장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제이다.
요한에 의하면, 우리의 성장의 목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모든 것들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들이 예수님의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닮는 것이 성장이다.
◈ 성장이 고통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의 교훈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성장은 당연한 결과로 주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때때로 어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평생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고 만다.
심지어 어떤 기독교 지도자들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행위를 중단하고 성령님께서 활동하시도록 길을 연다면 성장이 시작되고,
신자들은 그들 속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의 은사들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실 때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아무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과 감정과 행동이 동참할 때 비로소 성장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떤 것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에는 어려움과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시작하면 근육에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그분의 명령에 복종할 때 우리의 능력 이상으로 노력을 해야 하고, 따라서 그것이 고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형벌이나 고뇌 때문에 생기는 고통과는 다르다.
성장을 위한 고통은 우리가 나중에 후회하게 될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질병이나 노이로제가 아닌 건강을 가져다준다.
대부분의 성장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진행된다.
이 점에서는 생물학적 성장과 영적 성장이 서로 유사하다.
이런 성장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결과가 눈에 보일 뿐이다.
더욱이,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성장들을 몰라보게 된다.
성장 그 자체는 신비로운 것이다.
성장과 관련하여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성령님의 일이다.
그분이 성장의 방향과 형태를 결정하신다.
때때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신자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혼란과 불편 때문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의 성장을 보면서 놀라움의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