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몇 년 전 나는 노스 캐롤라이너 주의 윈스턴-살렘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마침 내 옆에는 세계적 기업 IBM의 한 중역이 앉았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판단한 나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결국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면서 그는 나에게 “선생님은 그리스도를 아신다고 자꾸 이야기하시는데,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라고 물었다.
그에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나는 방금 전에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는 “나는 지금 옛날 친구를 만나려고 가는 중입니다.
그 친구와 나는 최근 20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입니다”라고 말했었다.
그의 말을 일종의 비유로 삼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윈스턴-살렘에서 친구를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이름까지 언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그 분을 압니까?” “물론 나는 그를 압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비록 20년 동안 서로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압니다.”
“그 분의 머리카락 색깔이 무엇입니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라고 대답했다.
“그 분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 침묵이 흘렀다.
“그 분은 어디에서 태어났습니까?”
“그가 윈스턴-살렘에서 태어난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우리는 다섯 살 때 처음 만났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 친구 분을 안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라고 내가 다소 강하게 질문하자 그는 그런 경우에 으레 나올 법한 대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나도 나 자신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내가 그를 아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그의 친구에 관한 사실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를 안다고 말했다.
이 단순하면서도 깊은 진리에 착안하여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그분에 관한 사실들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인격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분을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는 것은 곧 반응하는 것 내게는 한 살짜리 손녀가 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부모, 자매들,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를 안다.
그 애는 아내와 나를 보면 낯선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즉시 반응한다.
그 아이가 우리를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아이는 우리를 알아보고 반응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즉 그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마치 어떤 사람을 알듯이 그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그분을 더욱 더 잘 알게 된다.
여기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서로 다르다.
나는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열심히 연구한다면, 당시 그의 개인적 친구들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의 친구들이 그를 알았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뛰어난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그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지만 정작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을 알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반응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 선택, 예정,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을 믿는다.
즉, 나는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로 부르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우리 속에 심어놓으신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도 그분의 부르심에 반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때, 그리고 그 후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이다.

리처드 핼버슨,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