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참신앙은 무엇인가?

◈ 참신앙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신앙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씀하셨다.
그분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고(막 2:5 ; 10:52 ; 눅 5:20 ; 7:50), 충분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꾸짖으셨다(마 6:30).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분은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며, 또한 그것을 주신다.
구원을 얻는 데 필요한 신앙은 눈을 감고 어두움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모험이 아니다.
신앙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려면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믿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들을 도말하고 깨끗케 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분이 약속을 지키실 것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한다.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계속 사는 데에도 역시 신앙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에도 우리는 종종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이 너무나 분명히 가르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믿은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성경이 일일이 다 지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도와주시며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것을 믿으면서 날마다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지금이 신앙으로 행동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할 때인가?’라는 고민에 빠질 수 있다.
‘구원하는 신앙’과 ‘신앙의 길을 계속 걸어가게 해주는 신앙’을 구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저 유명한 말씀, 즉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는 말씀은, 신앙이 우리의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날마다의 삶의 문제들도 해결해준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날마다 살아야 한다.

◎ 신앙의 척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실 수도 있고, 심지어는 시련을 주실 수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경우들은 이 진리를 증거해준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후 12:7-10).
위대한 ‘믿음의 장(章)’ 히브리서 11장은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으로 큰일들을 이룬 신앙의 용사들을 소개한다.
그 신앙의 용사들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도 있는 반면, 고문과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거나 돌로 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상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만큼 강했다.
그 박해를 받은 자들은 장차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참신앙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의 소원을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온갖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겸손과 순종과 성숙을 의미한다.
신앙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 건강, 인기, 명예, 그리고 물질적 부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신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갈 5:22,23).
그러므로 신앙을 판단하는 척도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이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가지시는 부분은 우리의 구원이다.
즉, 그분은 우리가 깨끗해져서 천국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갖고 계시다.
그분은 이 목적을 이루는 데 가장 좋은 길을 찾아 우리를 인도하신다.
참신앙은 “세상과 사탄이 어떻게 하든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간에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고 나를 사랑하시고 장차 나를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임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고난을 받아들이는 신앙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에 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 3:17)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다음 그들은 곧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라고 말했다.
이 세 사람은 그들을 구할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도, 일의 결과를 철저히 그분의 손에 맡겨드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결과든 간에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난에서 건짐 받는 것보다 오히려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신앙일 수 있다.
성숙한 신앙인은 고난에 맞서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는다.
그는 “하나님! 저의 계획, 저의 미래, 저의 사역, 그리고 저의 일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립니다.
그것들을 취하사 하나님의 영광과 저의 이웃의 유익과 저의 성숙을 위하여 사용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복이 자기의 계획 위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그분이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그의 계획을 사용하시기를 원한다.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이런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다이빙 사고로 목을 제외한 전신마비 상태가 된 후 신앙적으로 매우 성숙해졌다.
그러나 강한 믿음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완쾌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하나님은 그녀의 육체적인 어려움을 제거해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녀가 복음을 전하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다.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그리스도의 유익한 종이 되기 전에 신앙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그녀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건짐 받지 못하고 고문과 고통을 견뎌야 했다.
결국 수용소에서 풀려났을 때 그녀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더욱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종으로 변해 있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치료하시고 재정적 압박에서 구해주시고 나의 사업을 번창하게 하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참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이 그분의 뜻대로 행하시도록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긴다”라고 말한다.
나의 신앙은 성숙한 신앙인가?
“내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내가 부탁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숙한 신앙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어릴 적에 내게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하여 20대가 된 지금,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주십시오”라고 계속 부탁하는 단계를 거칠 수는 있다.
그러나 늘 그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단계를 지나 계속 성장하기를 원하시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도우신다.
그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기를 원하신다.
즉, 우리는 언제나 내 문제에만 몰두하는 미성숙한 단계에서 벗어나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의 신앙을 믿는 신앙’은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므로, 나는 구할 것이고 그분은 내게 주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긴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힘은 그만큼 강해진다.
왜냐하면 그분과 동행하면서 뒤를 돌아볼 때 우리는 “그분의 계획이 나의 계획보다 훨씬 더 좋았다.
내가 그분께 구했던 것을 그분이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성장했으므로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넷 오크, 기독교 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