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기도
신앙생활 FAQ

낮은 자긍심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긍심의 결여는 원죄로 인한 타락의 주요 결과들 중의 하나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어떤 가정교육을 받았든 간에 자긍심의 결여는 우리 모두의 본질적 문제이다.
거의 완벽하게 훌륭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깊은 마음속에도 “나에게는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자기 회의’가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성장기의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사랑 받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 ‘자기 회의’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본적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여 우리는 좌절감을 맛본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자긍심은 추락한다.
우리는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나는 가치 없는 존재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우리가 낮은 자긍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잘못된 신학 때문이다.
즉, 교회와 가정에서 신앙에 대해 잘못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비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겸손이며, 성화에 이르는 한 방법이다”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겸손과 자기 비하를 혼동하면 안 된다.
겸손과 자기 비하를 혼동하는 사람은 다시 자긍심과 교만을 혼동한다.
전자는 좋은 것이지만, 후자는 잘못된 것이다.

자기 비하 벗어나기 성경은 ‘자기 비하’를 겸손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가르침들과 충돌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눅 10:27).
이 말씀의 강조점이 ‘이웃 사랑’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씀 속에는 또한 ‘자신에 대한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적절한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의식해야 하고, 그 가치를 타인을 향한 적절한 사랑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

사도 바울도 자긍심을 모범적인 결혼 생활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한다”(엡 5:28~29)고 가르쳤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라”(엡 5:33)고 권면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이다.
자긍심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매우 힘들다.
자긍심은 당연히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데, 우리의 가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치 있는 존재라고 확신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사랑의 손길을 남들에게 뻗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 비하는 겸손도 거룩도 성화도 아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갈 2:20)는 것은 자기 비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깎아내리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낮은 자긍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로부터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위에 우리의 자긍심을 세우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가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긍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존귀히 여기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만드신 계획 안에서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하신다.
바울은 “그분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셨다”고 말한다(엡 1:6).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똑같이 대우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세례 때에 예수님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동일한 말씀을 우리에 대해서도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자긍심을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는 눈높이만큼 끌어올리는 방법을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자긍심 끌어올리기
첫째,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잘 살펴보아라.
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당신이 자기 비하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잘못을 지적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었다.
그로부터 한두 주 후에 나를 찾아온 그들은 매우 놀라서 “자기 비하가 이토록 뿌리 깊게 습관화되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낮이나 밤이나 항상 깎아내립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칭찬을 과감히 받아들여라.
나는 사람들에게 “남들이 칭찬할 때 가볍게 미소지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훈련을 하십시오”라고 권한다.
칭찬 받는 것을 무조건 교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자기 비하를 겸손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셋째, “나는 … 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말라.
낮은 자긍심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은 “나는 … 이다”라고 말하지 말고 대신 “나는 … 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변하고 있으며, 또한 변해야 하는 존재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는 … 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나는 … 이다”라고 말할 때 거의 언제나 부정적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나는 어리석다.
나는 추하다.
나는 사랑 받지 못한다.
나는 서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우리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습관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깨닫고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 때마다 성령님이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굳이 “나는 … 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말하라.

넷째,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를 평가할 수 있게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거부당한 경험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다면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아를 멍들게 하는 강한 충격을 겪었다면 그것을 치유해야 한다.
이런 치유는 혼자의 노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표에 따라서 당신을 치유하실 것이다.
당신이 치유의 단계를 하나씩 올라설 때마다 그분은 매우 기뻐하신다.
당신을 향한 그분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당신이 무엇을 성취했기 때문에, 당신에게 사랑 받을 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사랑은 거저 주어진다.
당신의 행위 때문에 그분의 사랑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행위 때문에 그분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분이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는 가치 없는 존재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 데이빗 씨맨즈, 기독교 교양